200자 원고지 1만6398매 분량… 일반 독자로 8번째 완성·기증
군청 공무원 출신 문학관 산파 役, "소설·문학관 세계에 널리 알릴 것"
“조정래 선생의 고민을 함께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12년이 지나서야 겨우 빛을 보게 됐습니다.”
위승환(60) 태백산맥문학관 명예관장은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을 여러 번 읽고 일부는 줄줄 외우는데도 막상 필사를 하니 눈에 놓쳤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드러났다”며 “이미 끝냈어야 할 작업을 이제야 마치게 돼 조 선생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필도 손으로 직접 깎으면서 정성을 들였어야 했는데, 연필깎이로 깎아 필사한 점도 죄송하다”며 웃었다.
위 관장은 지난달 10일 태백산맥 10권을 직접 손으로 옮겨 쓰는데 성공했다. 200자 원고지 1만6,398매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일반 독자로서는 8번째. 필사본은 문학관에 기증했다. 전남 보성군청이 관리 중인 태백산맥문학관은 159종의 작품 관련 자료들을 갖고 있는 단일 문학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소설의 제목을 이름으로 명명한 이 문학관에는 2008년 작가가 기증한 육필 원고도 있어 작가와 독자의 필사본이 함께 전시된 유일한 문학관이기도 하다.
결승점엔 ‘8등’으로 들어왔지만, 필사 시작은 2002년 7월이니까 일반 독자들 중에는 위 관장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해 말 사고로 인한 오른팔 골절, 격무 부서로의 인사 이동, 대학원 입학 등 뜻하지 않은 ‘난관’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5개월여 만에 연필을 내려 놓아야 했다. 그러다 2013년 일반인 6명이 태백산맥 전권 필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자극제가 됐다. 특히 6명 모두 소설의 배경(전남 보성군)이 아닌 타 지역(서울, 충남, 경남 등) 출신 주민들인 점도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2013년 8월 25일 다시 연필을 잡은 그는 지난해 12월 10일 12년 5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을 끝냈다. 현재까지 완성된 필사본들이 6개월~4년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사연도, 우여곡절도 많았던 땀의 결실이다.
위 관장은 태백산맥 문학관 건립 계획을 처음 내 놓은 보성군청 공무원 출신이다. 1994년 군청 문화관광계장으로 재직 당시 이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소설 속 지명과 일부 인물의 이름이 실제와 같아 매료됐다. 이에 소설을 모티브로 한 8쪽 분량의 ‘태백산맥 문학공원 조성계획’을 제출했지만 당시는 소설을 둘러싼 좌우 이념논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렇게 묻힐 뻔했던 것이 민선 시장 체제로의 전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훈풍을 타고 ‘남해안 관광벨트 조성사업’의 아이템으로 구체화됐다. 이후 일부 단체의 반대 등을 넘어 2008년 11월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필사자들이 모두 그렇지만 위 관장의 태백산맥 사랑도 각별하다. 2012년 은퇴한 뒤에도 문학관 명예관장을 맡으면서 태백산맥 속 문학기행 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에는 ‘태백산맥닷컴’이란 웹사이트를 만들어 2010년 말까지 11년 동안 사비로 운영했다. 2004년에는 ‘소설 무대의 관광 상품화 방안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대학원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태백산맥 문학공원에 대한 최초의 연구로 인정돼 문학관에 전시 중이다.
위 관장은 “태백산맥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고 문학관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