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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장·사업실패… 역경딛고 성공 '오뚜기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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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장·사업실패… 역경딛고 성공 '오뚜기 인생'

입력
2015.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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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5남매 가장 노릇, 발품 팔며 종잣돈 모아 사업

투자 실패로 재산 몽땅 날려 원점에서 다시 출발 재기 성공

이제 '이웃돕는' 사회환원 나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부모가 연이어 세상을 등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졸지에 5남매 중 소녀가장이 된 그에게 유산이라고는 동생 뒷바라지와 찌든 가난 뿐이었다. 경북 영천의 시골 학교를 다니며 키 큰 소녀로만 기억되던 그가 30여 년이 흐른 지금 연매출 100억원을 육박하는 중견 기업인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경북여성기업인협의회 영천지회장인 ㈜동서제약 ‘웰빙’의 최경자(47) 대표 얘기다.

그는 2007년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인 종근당과 건국유업으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아 소규모 건강보조식품과 기능식품 판매에 불과했던 회사를 대량생산체제로 전환했다. 지난해 매출 97억, 올해 120억원을 향해 뛰는 중견기업의 CEO지만 소녀가장의 꼬리표가 말해주듯 하루 아침에 성공의 문으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1990년 초 가난하지만 마음 만은 의욕과 희망으로 가득찼던 남편 채대훈(51) ㈜동서생활건강 대표를 만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유년기의 아픈 기억들은 이들 부부가 월급쟁이 대신 사업의 길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학비를 내지 못해 대구한의대를 중퇴해야 했던 채씨의 제안으로 한의원에 파우치 등 소모품을 납품했다. 한의학을 배우며 한의원 소모품목에는 훤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고된 신혼이었지만 성공을 향한 꿈과 열정이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사업이 빛을 보면서 최씨 부부는 중탕기와 엑기스추출기로 눈을 돌렸다. 당시 건강식품 열풍이 불었던 터라 부부는 알토란 같은 종잣돈을 쥐게 될 정도가 됐다.

하지만 하늘은 달콤한 열매만 맛보게 하지는 않았다. 1993년 남편이 차를 몰다 사망사고를 낸 후 2년 간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다. 최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편 면회를 가는 눈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때 최씨를 딱하게 여긴 작은 아버지가 영천시 화남면에 놀리고 있는 지인의 땅을 임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무엇이든 해보라는 것이었다.

최씨는 과일의 도시 영천의 포도와 사과, 복숭아 등 과일 음료에 착안했다. 창업자금을 받아내고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하던 유기농 과일음료 판매로 마음을 정했다. 출소한 남편과 다시 재기에 나섰다. 남편 채씨는 TV홈쇼핑도 직접 출연, 제품을 홍보했고 매출은 급성장했다.

‘이제는 됐다’고 한숨 돌릴 즈음 또 악몽이 찾아왔다. 남편이 폐비닐을 가공해 농사용 재생비닐로 만드는 사업을 제안받고 투자를 했지만 결국 원료 공급 악화 등으로 은행 대출금 35억원 등 전 재산을 몽땅 날려버린 것이다. 남편은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최씨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영천의 한 폐교를 임대해서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유기농 과일 음료와 흑염소, 사슴 , 홍삼, 흑마늘 엑기스 등 수 많은 건강식품까지 추가했다. 이 사업이 현대인의 웰빙 선호 성향과 맞아 떨어지면서 오늘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편 채씨의 신용도 8년 만에 회복됐다.

소녀가장 최씨는 피죽도 못먹던 시절에도 항상 웃고 다녔단다. 그 뒤에는 책임감이 있었다. 시골학교지만 줄곧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소녀가장으로서 동생들을 책임져야했기 때문이다. 한 눈 팔지않고 달려왔던 그가 이제는 사회환원에 나섰다. 사업장 한켠에는 ‘동서 청춘대학’ 이라는 어르신 여가교실도 따로 만들었다. 직원 60명 중 3분의 1인 20명은 장애우다. 사업장이 곧 장애우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최씨는 훗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다. 자식들에게도 사업을 물려주지는 않기로 했다. 최씨는 “어렸을 적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이제는 이웃을 돕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경북도 중소기업 여성 기업인 부문에서 회사경영, 사회기여도 등 10개 부분에 대한 심사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오뚜기인생 최 대표는 “지금이 시작이라는 각오로 내 고장을 위해 일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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