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9시, 워싱턴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을 했다. 대통령들의 새해 국정연설은 만국 공통 연례행사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어딘가 달랐다. 미국 케이블방송인 MSNBC가 실시간으로 보도한 연설 지지율은 대부분 80% 후반대를 기록했고, 최고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조회수는 약 150만 건에 달한다. 신년연설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된다.
이날 연설에선 '오바마식 소통'이 위력을 발휘했다. 오바마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연설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중산층 경제'라는 키워드도 제시해 뇌리에 새겼다. 연설 중간 "GO TRY IT!(네가 한 번 해봐!)"라는 말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주장을 일축해버리기도 했다.
떡잎부터 달랐던 ‘오바마식 소통’
'오바마식 소통'이 빛을 발휘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첫 대선 당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전통적인 신문, 방송에 의존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오바마는 페이스북, 트위터, 이메일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선거공약을 직접 전달했다. 또한 페이스북 창업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휴즈를 온라인 조직화 전문가로 영입하며 ‘마이보(MyBO)’라는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대대적인 SNS홍보를 진행했다. 특히 MYBO Activity Tracker라는 쌍방향게임(지역행사 개최 및 참가, 정치자금을 기부, 게시물 게재 등의 활동을 하면 점수를 얻게 되는 게임)을 만들어 유포시킴으로써 3천만 달러가 넘는 정치자금 기부를 받았고 무려 20만개가 넘는 지역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오바마는 당선 후 '소셜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노규성 회장은 "오바마 행정부는 새로운 선거 메카니즘을 만들었다."며 오바마의 유권자를 향한 적극적인 소통의 비결은 SNS기반의 과학적인 빅데이터 분석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집권 이후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해서 SNS를 통한 소통에 힘썼다. 개인 트위터 계정에 정치적 공약에 관한 굵고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했고, 자신이 직접 쓴 글 뒤에는 "?BO"라는 표시로 차별성을 두어 읽는 이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동시에 백악관 홈페이지를 비롯해 백악관 플리커(flickr),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 채널(youtube) 등을 개설해 대통령의 행보와 정책사안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2012년에는 구글 플러스 행아웃(구글 화상대화 서비스)을 이용해 젊은 층과의 직접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작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목표로 제정된 건강보험개혁법 '오바마케어'를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 코미디 방송 '비트윈 투 펀스'(Between Two Ferns)에 출연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2030세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영상보기)
대통령 ‘움짤’은 백악관 텀블러에서
2013년 백악관은 페이스북, 유튜브, 플리커에 이어 새로운 소통채널을 열었다. 텀블러다. 텀블러는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페이스북 다음으로 사용하는 마이크로 블로그(한 두 줄 정도의 짧은 글을 올리는 블로그)채널이다. 텀블러의 콘텐츠는 주로 GIF 애니메이션, 이른바 ‘움짤’이 많다.
첫 게시물은 백악관 공식텀블러 운영 방침을 알렸다. 원형의 인포그래픽 형태로 텀블러에 올릴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설명하면서 움짤과 인포그래픽을 많이 활용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최근에는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에 “나는 나의 두 딸들이 그저 어느 누군가의 아들들과도 동등하게 대접받길 원한다.”라는 코멘트를 달며 양성평등에 대한 정책의지를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짧고 공유가 용이한 텀블러의 게시물은 한 건당 천개가 넘는 네티즌반응이 달린다.
소통 대통령을 위한 혁신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결국 오프라인 소통의 연장선이다. 작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에게 학자금 대출에 관한 질문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그 중 하나를 골라 직접 문자로 답을 해 주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백악관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시도다. 미국 IT 전문 미디어 Mashable 에 따르면 첫날에만 100만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문자를 보냈다.
이러한 시도는 집권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시행돼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을 ‘소통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찍은 오바마의 사진에서 그는 권위를 벗어던진,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속 그는 백악관에서 아이들과 뛰놀기도 하고, 청소부와 주먹 인사(주먹을 쥐고 맞대는 것)를 한다. 또 백악관에는 3년 째 직원의 자녀에게 90도로 몸을 굽혀 머리를 만져보게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기도 하다. 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통령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데 일조했다. 그 결과 오바마 캠프에 대한 기부 총액이 2008년 대선 당시 5억 달러에서 2012년 재선 때는 6억 9천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소통은 멈추지 않는다. 2013년 10월에는 ‘대통령의 깜짝 점심 산책’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선보였다. 영상에는 대통령이 직접 길가는 시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고 이를 보며 놀라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공식 유튜브 계정에 ‘대통령과 함께하는 유튜브 인터뷰’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에서는 유튜브 스타 글로벌 그린이 ‘퍼스트 레이디’를 ‘퍼스트 와이프’로 말실수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에 “내가 모르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나요?”라며 재치 있게 맞받아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다. (영상보기)이 영상은 현재 300만건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오바마 식 직접 소통이 가지는 힘
오바마 대통령과 약 8년간 직접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오바마식 소통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 있다. 한국 방송학회 인터넷연구회 회장인 임성호 박사(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교류를 쌓으며 그의 소통 방법과 연설 특징을 연구해 각종 논문을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 - 그 8년간의 소통(가제)’이라는 책을 집필중이다. 임 박사는 “감동을 주는 공감적 메시지와 시기적절한 발언, 역사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소통법이 오바마식 소통”이라고 분석했다. 또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하는 연설에는 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인 관용, 인권, 공감, 자긍심, 상호 이해, 상호 존중, 상호 협력, 문화 다양성, 평화의 문화, 우정, 가족, 신의 축복 등과 같은 주요 10여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 박사는 “오바마 대통령과 8년간 직접 소통하면서 참여 관찰법으로 살펴본 결과 그는 끊임없이 쌍방향 소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필요한 정보를 상대방(국민들)으로부터 얻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바마 소통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치인들은 쌍방향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활동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아쉬워했다.
김진솔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
이유민 인턴기자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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