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다가 일어나니 지하철 종점이었다. 막차를 타고 집에 가다가 깜박 잠이 든 것이다. 원래 탔던 곳에서보다 오히려 집과 더 멀어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생 처음 와본 곳이라 어리둥절했다. 그런 나를 타박하기라도 하듯 사방팔방에서 칼바람이 불어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하철에서 잠든 나 자신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30분 넘게 헛손질만 하다가 겨우 택시를 잡았다. 행선지를 말했더니 아저씨가 그러신다. “아, 제가 사는 데랑 방향이 비슷하네요.” 따듯한 택시 안에서 또다시 살짝 잠들고 말았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는데 아저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손님, 다 왔어요.” 눈을 뜨니 집 근처다. “아, 고맙습니다. 요새 통 잠을 못 자는데 이동 중에 자다니 이상하네요.”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하신다. “아녜요. 저도 근처까지 왔으니 집에 돌아가야겠습니다. 실은 오늘, 아니 어제가 아내 생일이었어요. 새벽에 나와 지금까지 일했으니 아내가 단단히 삐쳐 있을 거예요. 빵집이 아직 문을 안 닫았으니 들렀다 가야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케이크를 마주하고 좋아할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없이 애틋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은 종일 헛웃음을 짓고 헛손질을 해도 그런 미련한 나를 받아줄 데가 있다는 말이다. 오늘 하루 지쳐도 된다는 말도, 마침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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