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여만원 받는 기초생활자 한 달 수입 절반이나 난방비에
전문가들 "생존·건강 직결된 문제… 에너지 복지 안전망 구축 절실"
서울 금천구 시흥3동 낡은 단독주택에 세들어 사는 정정갑(64)씨는 겨울철이면 감기를 달고 산다. 난방비 부담에 한 겨울에도 담요 한 장만 덮고 지내는 날이 많아서다. 이번 겨울에는 이른 추위에 얻은 감기가 벌써 두 달째 낫지 않아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정씨는 서울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27일 “방 공기가 차 약을 먹어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면서도 겨우 냉기가 가실 정도로만 난방을 했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정씨가 사는 4.9㎡(약 1평 반)의 작은 방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대신 액화석유가스(LPG)를 구입해 난방을 한다. 6만원 상당의 LPG 한 통을 쓰는데 걸리는 기간은 5,6일에 불과하다. 한 겨울에는 아무리 아껴도 한 달 LPG 구입비로만 2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의 한 달 수입이 46만원 남짓이니 난방비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는 셈이다. 정씨는 “정부에서 1년에 한 번 가스비 지원금으로 9만원을 지원해주지만 기본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많다 보니 턱없이 부족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철 혹한을 피할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빈곤층이란 소득의 10% 이상을 전기요금, 난방비를 포함한 에너지 사용료로 지출하는 가구를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12.4%인 약 120만 가구가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너지 빈곤층들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주 원인은 열악한 주거 환경이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정씨의 집은 여기저기서 바람이 들어온다. 열 손실이 많아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남의 집이라 함부로 개조할 수가 없다. 다른 가구의 경우도 그나마 적은 부담으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가스 설비를 할 목돈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에 비해 중산층 이상의 에너지 부담 지출 비용은 오히려 적다. 단열재 등 열효율이 높아 에너지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득 수준이 낮은 가구의 난방비 지출 비중은 상위 가구에 비해 훨씬 크다. 2013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 수준 하위 10%(월평균 소득 31만3,000원)는 벌이의 21.7%를, 하위 20%(91만7,000원)는 8.5%를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반면 소득 상위 10%(865만9,000원)의 소득 중 연료비 비율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한 난방 대책 없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는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취약 계층의 연간 에너지 비용은 노인ㆍ아동ㆍ장애인 가구가 각각 81만4,200원, 155만3,800원, 92만8,000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절기 연료비가 비동절기 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동절기 연료비가 비동절기보다 약 7만~8만원 가량 더 많이 발생하고, 아동과 장애인 등 가구원이 포함된 경우는 각각 25%, 6%가량 더 많이 지출됐다.
전문가들은 매년 반복되는 에너지 빈곤의 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 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영록 한국주거복지협회 사무처장은 “에너지 빈곤층에게 에너지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생존 및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라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을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한편 저렴한 에너지원을 쓸 수 있는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도 “주거비를 포함한 수도ㆍ광열비는 가구소득이 낮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에너지 빈곤화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수요와 환경적 요인을 반영해 설계한 에너지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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