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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황과 정치적 극단주의

입력
2015.01.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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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황은 정치적 극단주의의 득세로 이어졌다.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흔히 ‘나치(Nazi)’라는 별칭으로 불린 사상 최악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의 집권 전야도 그랬다.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은 베르사이유조약에 따라 1,320억 금화마르크(후에 경감됨)의 전쟁배상 부담을 안고 출범해 경제적으로 매우 피폐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빵 한 덩이가 수백만 마르크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1925년 전승국과 화해가 이루어진 로카르노조약을 계기로 미국 등의 자금을 유치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업대국으로 재기한다.

▦ 1919년에 출범한 나치는 독일에 가혹한 전쟁 책임과 배상을 부과한 베르사이유 체제에 강력 반발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알자스 지방을 숙적인 프랑스에 넘겨주는 등 영토 상실에 따른 국민적 굴욕감에 편승한 극우민족주의 성향도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한몫 했다. 그러나 바이마르공화국이 경제 재건에 부분적으로 성공하면서 1926년 총선까지는 불과 1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데 그쳤다. 당시 독일 국민 가운데 히틀러의 집권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 상황이 급변한 계기는 1929년 미국 발 경제대공황이었다. 치명타를 맞은 독일은 대공황 이후 1932년까지 60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16~30세 남자 중 절반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바이마르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복지비용 삭감과 증세를 시도하다 내각이 해체되는 등 극심한 정정불안에 휩싸인다. 히틀러와 나치는 이 시기, 그러니까 바이마르 공화국 2차 경제위기를 맞아 대중들이 극심한 궁핍과 좌절에 빠지고 민주공화정에 대한 신념도 크게 흔들렸던 난국에서 전제적 집권에 성공한다.

▦ 요즘 유럽에서도 불황과 실업의 늪 속에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잇달아 발호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은 한 때 기괴한 소수정파로 취급됐으나 요즘은 지지율 1위(28%)를 기록하며 집권을 눈앞에 둔 양상이다. 반(反)이슬람 기치를 내건 네덜란드 극우정당 자유당도 최근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조건인 긴축정책을 거부해온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마침내 집권에 성공했다. 왠지 여기저기서 불안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은 분위기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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