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 ‘다음’의 전국 날씨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영하 1도일 때, 제주 기온은 영상 6도였다. 제주는 정말 따뜻한 남쪽 나라다.
제주에 ‘나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다. 한반도는 넓다면 넓은 땅이지만, 바다 건너서는 제주만큼 넓은 곳이 없다. 토박이가 제주도 방언으로 쭈욱 말을 하면 무슨 말일지 못 알아들을 사람이 태반이지 않은가.
제주에는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했던가. 바람과 돌은 이해가 가지만 여자가 많다는 건 글쎄다. 단순히 숫자보다 제주의 삶을 지탱해온 게 여자라는 의미까지 담아서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바람 불고 돌 많은 그 땅에서 제주 여자가 생계를 끌고 가기 위해 해온 일로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건 ‘물질’이다. 물질을 했던 건 제주 해녀다.
제주 해녀가 얼마나 생활력이 강했으면 요즘 같은 한겨울에도 한 달에 보름 안팎으로 물속에 들어간단다. 물위와 달리 바닷속은 수온이 일정한 편이지만 겨울 바다가 차갑지 않을 리 없다. 그걸 견디는 걸 보면 제주 해녀가 남다른 건 분명하다.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이든, 어디 대학에서 연구까지 하려 든 것처럼 신체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든. 그래서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제주도의 노력이 값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해녀가 제주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면 그물이나 낚시로 고기를 잡든, 물속에 들어가 어패류를 따오든, 제주 해녀가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특히 제주 해녀와 똑 같이 여자들이 바다에 들어가 전복이나 조개를 따오는 물질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 사람을 일본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한자로 해녀(海女)라고 쓰고 그걸 ‘아마’라고 읽는다.
그래서 제주도는 해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에 관심을 가졌던 초기, 일본과 공동 등재를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서도 수년 전 그런 보도가 있었고, 일본에서 해녀 유산 보존에 관심 있는 미에현 도바시의 ‘바다 박물관’(관장 이시하라 요시카다) 같은 곳에서 낸 자료에도 ‘2007년 제주도에서 해녀를 한일 공동으로 무형유산에 등재하자고 요청해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노력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서는 일본과 등재 경쟁에서 꼭 이겨 단독으로 세계유산이 돼야 한다는 현지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우리가 먼저 등재 노력을 시작했는데 일본이 한국을 떼놓고 단독으로 해녀를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한다는, 다소 출처 불명의 이야기들이 번지면서 이런 움직임을 부추긴 것 같다.
일본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한국 못지 않게 관심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해녀를 두고 착안을 먼저 한 한국을 제치고 일본이 단독으로 등재하려고 노력한 정황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앞서 언급했던 미에현의 ‘바다박물관’ 같은 곳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총괄하는 일본 문화재청에 한일 공동 등재를 요청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까.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이라고 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양국 갈등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시원하게 해결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일은 불편한 채 이대로 가도 좋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뭔가. 과거사가 문제인데 그걸 양국 지도자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못 된다면 시민끼리 얼굴을 맞대고 토론해보는 건 어떤가. 짧았던 일본 생활이었지만 실제로 나는 그런 경험 속에서 한일이 서로 오해했던 부분이 있고, 해답에 근접한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해녀’의 세계유산 등재를 제주도가 그런 시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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