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출근 말라" 정종섭 장관 엄명, 정부 부처 중 재량근무제 첫 사용
현장행파·재충전파 각양각색… 일반인 가장해 민원인 고충 체크
평소 같으면 서울 광화문의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야 할 월요일 아침 허언욱 행정자치부 지역발전정책관은 차를 몰고 교외로 떠났다. 맞은편 출근길의 정체된 차량들을 보며 시원하게 내달리는 길이 영 어색하면서도 신이 났다. 오전에 경기 연천군의 푸르내마을을 둘러본 그는 오후에 강원 춘천시 신동면의 실레마을을 찾아 김유정문학촌 촌장인 소설가 전상국씨와 지역공동체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은평구의 자택을 출발해 그가 하루 이동한 거리는 100여㎞.
허 정책관은 “갑갑한 사무실을 벗어나 현장을 돌아보니 정말 신바람이 난다”며 “이제 화천으로 이동해 숙박을 하고 다음날 화천의 토고미 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생활만 최소 25년 된 행자부 국장급 17명이 26일 단체로 사무실을 비웠다. 제도는 있지만 누구도 사용해본 적 없는 재량근무를 정부 부처 가운데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재량근무는 사무실 밖에서 일을 해도 그 업무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행자부 인사복무규정에 존재하는 유연근무제의 일종이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최근 “(재량근무 기간 동안)독서도 좋고, 등산도 좋다”며 국장들에게 청사에 나오지 말라며 5일간(26~30일)의 재량근무를 강제했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솔직히 국장들의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강제된 휴가이기 때문이다. 정말 사무실을 비워도 좋은 건지, 뭘 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그냥 시간을 보내서는 안될 것 같고, 일주일 동안 근사한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지 않았다고 했다.
장관의 엄명으로 사무실을 빼앗긴 국장들은 서류에 묻혀 지내며 잃었던 현장감과 여유로움을 찾겠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재량근무 첫날을 보냈다.
김일재 인사기획관은 이날 허 정책관과 같은 ‘방랑자 코스’를 택했다. 김 기획관은 국가기록원과 세종시 청사관리소 등을 찾아 사업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겪고 있는 인사고충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홍일점인 김혜영 정보공유정책관은 자택 인근 경기 안양시 범계동사무소를 찾아 일반인을 가장해 민원인들의 불편사항을 체크했다. 동사무소에 미리 방문사실을 알리면 서로 불편해질 것 같아 일부러 조용히 가봤다는 그는 “민원24 등을 통한 무인민원발급서비스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뛰어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무인발급기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민원인들도 있다는 걸 느꼈다”며 “앞으로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과감하게 재충전으로 시작한 이들도 있다. 김석진 공공서비스정책관과 이인재 지방행정정책관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서점과 극장 등에 들리는 등 여가를 보내며 곧 이어질 강행군에 대비했다. 하지만 A 국장은 사무실 출근을 감행하기도 했다. 보직변경에 따른 업무파악이 절실했던 그는 사무실 문을 닫고 같은 사무실 직원들에게 출근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지만, 취재진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LH공사 주최 토론회 등에 참석한 김현기 지방재정정책관은 “국장들 6~7명이 28일과 29일 각각 경기 성남시 NHN본사와 서울 강남구 구글코리아ㆍ유한킴벌리 등을 방문해 민간부문의 혁신에 대해서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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