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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오바마의 예언, 김정은의 선택

입력
2015.01.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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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北정권 무너뜨린다 압박

대화 동력 기대하기 어려운 북미관계

남북이 선제적 조치로 돌파구 열어야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폭군, 식탁의 버릇 없는 아이, 실패한 지도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당시 김정일에 대한 독설과 비난은 유명했다. 사석에서 김정일을 피그미(아프리카의 왜소 원주민)라고 비하한 데서는 인종적 혐오감마저 묻어났다. 그에 보복하는 북한의 독설 미사일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으로 날아갔다.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 인간추물, 텍사스 목장의 말몰이꾼. 평양과 백악관 사이에 벌어진 험악한 말 전쟁은 부시가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뒤 대북정책 기조를 선회할 때까지 계속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임 부시 대통령을 능가하는 독설을 북한을 향해 쏟아냈다. 22일(현지 시간) 국정연설 후속 행사의 하나로 백악관에서 가진 유튜브 스타들과의 인터뷰에서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장 제재를 많이 받고, 가장 단절된 국가” “이런 류의 정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 잔인하고 폭압적이며 자국민조차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독재체제라고도 했다. 김정은 정권을 비난하는 데 더 이상의 표현이 있을까 싶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군사적 해결책은 답이 아니라면서 배제했다. 동맹인 한국이 바로 옆에 있고 전쟁이 벌어지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북한에 정보가 흘러 들어가도록 인터넷 공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소니 픽처스 해킹과 관련한 대북제재 강화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올해 첫 업무를 시작했다. 올해 북한에 대해 작심하고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 거론하며 강력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북한의 반격도 격렬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5일 “어리석기 그지 없는 망상” “주권국가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과 적대감” “대결에서 궁지에 몰린 패자의 넋두리”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북한은 지난 연말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가 오바마의 독려로 미국 일부 극장에서 상영되자 그를 밀림의 원숭이처럼 행동한다고 비하하기도 했다.‘잡종’ ‘광대’ ‘원숭이’ 등의 인종 편견적인 용어들은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할 때 예사로 동원된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북미 사이 말 대 말 전쟁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철회로 대화국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오바마의 불신과 혐오는 뿌리가 너무 깊다. 김정은 정권은 출범 직후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을 고리로 한 ‘2ㆍ29합의’를 ‘광명성 3호 인공위성’ 발사 강행으로 무산시켰고, 곧 3차 핵실험을 강행해 오바마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은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물론이고 미국 조야에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도 부시 2기 행정부 후반과 다르다.

이러니 북미 간 앞으로 상당기간 대화와 협상의 동력이 생겨나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상급 독설로 북한을 비난하고 정권의 붕괴를 언급했지만 북한 문제를 화급한 현안으로 여기지 않는 한가함이 묻어난다. 군사공격 배제는 다행스럽지만 상황변화를 적극적 노력 없이 사실상 손 놓고 있겠다는 거나 비슷하다.

새해 들어 대북 대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상당한 온도 차가 날 수밖에 없다. 임기 3년 차 맘은 바쁜데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북한 김정은도 여유 있는 처지가 결코 아니다. 올해 3년 탈상을 하고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국제외교무대에도 데뷔해야 한다. 그런데 안팎 여건이 좋지 않다. 미국의 압박 공세는 날로 강도가 더해지고, 남북대화는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은 5월 러시아의 2차 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 초청을 받고 참석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 먼저 핵 동결과 같은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러시아 방문에 나선다면 지금과 같은 답답한 여건을 일거에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의 선택 폭도 커지고 남북이 한반도 상황을 주도해 갈 여지도 그만큼 넓어진다. 물론 오바마가 단언한 북한 정권 붕괴도 그렇게 쉽게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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