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장단의 한국 첫 비언어극
에든버러에서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세계 51개국 3만1290회 공연
류승룡, 김원해, 서추자, 장혁진 등 ‘난타’를 거쳐간 스타들이 26일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12월 31일 기록한 누적관객 1,000만명 돌파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난타전용관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는 이들 외에도 공동기획자 송승환ㆍ이광호 PMC프로덕션 회장, 배우 이순재와 안성기,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해 난타의 17년 역사를 되돌아봤다.
이날 환영사를 통해 “‘난타’는 자식 같은 존재”라고 운을 뗀 송승환 회장은 “1997년 10월 10일 세상에 태어난 이후 두 살 때 영국 에든버러에서 세상을 깜짝 놀래켰고,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를 거치며 전세계 관객들을 만난 끝에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호 공동회장도 “IMF 시절 내게 일을 준 ‘난타’는 40~50대의 나에게 큰 선물이었다”며 “올해 중국 진출 예정인 난타가 누적 관객 1억명을 돌파할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1,000만 관객 돌파 외에도 ‘난타’가 남긴 기록은 수없이 많다. 한국 전통가락인 사물놀이 장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이고, 지난해까지 51개국 289개 도시에서 총 3만 1,290회 공연됐다. 미국, 일본, 동남아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까지 말 그대로 안 간 곳이 없다. ‘난타’를 거친 배우는 남자 103명, 여자 40명으로 총 143명이 칼을 잡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에 소모된 칼만 1만 8,975자루에 이르고, 오이 31만 2,900개, 양파 12만 5,160개, 양배추 21만 9,030개, 도마 2,070개가 사용됐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난타’가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배경에는 1999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있었다. 송승환 회장은 세계 무대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난타’팀을 이끌고 에든버러의 문을 두드렸다. ‘난타’는 그 해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별 다섯 개를 받고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에든버러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0년 서울 정동에 한국 최초로 상설 전용관을 열었고, 2003년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 무대를 밟았다. 여세를 몰아 2004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미네타 레인 극장에 전용관을 마련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이후에도 제주, 명동, 홍대, 충정로, 태국 방콕 등에 전용관을 세우며 단일 콘텐츠로도 극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난타’를 거쳐간 배우들도 스크린과 TV에서 승승장구했다. 1998년부터 7년 간 섹시가이 역할로 활약한 류승룡은 영화 ‘명량’ ‘7번 방의 선물’ ‘광해’등을 통해 ‘1,000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수석주방장 역을 맡은 김원해는 ‘명량’ ‘해적’ ‘타짜-신의 손’‘SNL 코리아’등 영화와 예능을 오가며 맹활약 중이다. 장혁진 역시 지난해 드라마 ‘미생’에서 섬유1팀 문과장 역을 맡아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 받고 있다.
이날 기념 행사에 참석한 류승룡은 “영화 1,000만 관객 돌파와는 사뭇 다르다. 녹록지않은 영화 현장을 ‘난타’에서 배운 연기로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난타’와 함께한 과거를 추억하던 그는 “해외 공연을 하면서 김원해 선배가 장염으로 무대 위에서 배설한 적이 있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김원해 역시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아 생활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어느 샌가 연일 매진이 이어지고 암표가 팔리는 믿기지 않은 상황을 겪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날 감사패를 받은 장혁진, 서추자, 류승룡, 김원해는 공연 당시 포스터와 같은 포즈를 취하며 ‘난타’를 추억했다.
현재 서울 명동, 충정로, 제주 등 난타 전용극장에서 상시 공연 중인 ‘난타’는 3월 21일~6월 14일 대학로에서도 관객과 만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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