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버스는 대중교통 자동 분류, 고속버스는 별도로 수작업 거쳐야
"오류나도 책임소재 따질 수 없어"
직원이 6,000여명인 모 기업의 연말정산 담당팀원 14명은 지난주부터 쏟아지는 문의전화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다. BC카드에 이어 26일엔 삼성, 하나카드 고객들의 대중교통 사용금액이 연말정산 자료에서 누락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미 관련 서류를 마감한 직원들이 “다시 서류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 섞인 문의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한 담당자는 “예년 같으면 이미 제출 받은 서류의 오류 여부를 점검할 시기인데 잇단 카드사 사고에 말 그대로 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형 카드사들의 잇따른 공제항목 분류 사고로 이처럼 납세자들의 혼란이 커지면서 연말정산 시스템의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카드사들은 매년 국세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카드 사용내역을 일반, 대중교통비, 전통시장 이용금액 등으로 분류한다. 이 때 가맹점 관리 및 분류는 카드사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국세청은 참고자료만 제시할 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일정 틀이나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미흡해 카드사별로 가맹점 분류가 제각각이거나 이번처럼 누락이 발생할 여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실한 시스템은 오류 사고로 납세자들의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정확한 책임소재를 따질 수 없게 한다는 맹점이 있다.
대중교통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후불교통으로 계약된 곳은 자연히 대중교통으로 분류되지만 고속버스는 일반 카드 결제로 승인돼 카드사가 별도로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분류과정에서 수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일부 실수가 있을 수 있다”며 “카드사가 보다 철저하게 작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류를 사전에 걸러낼 만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3개 카드사에서 일반 가맹점으로 잘못 분류된 6개 고속버스 가맹점의 경우 BC카드가 자체적으로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올 연말정산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액으로 정정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통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카드사는 국세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체 데이터베이스(DB)와 통계청이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취합한 주소지가 동일하면 전통시장, 엇갈리면 일반 가맹점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가맹점 이동이 잦고 이동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자료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이번처럼 같은 상가에서 결제하고도 한 카드사에서는 일반 사용액으로, 다른 카드사에서는 전통시장 사용액으로 분류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에 따라 단지 카드사만이 아니라 병원, 보험사, 교육기관 등 국세청에 연말정산 자료를 제공하는 다른 기관들에서도 얼마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시스템 정비가 덜 된 상태에서 공제항목들이 추가되다 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국세청이 더블체크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자체 등과 논의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서둘러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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