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설명도 제대로 안 돼 있고 기입 순서 뒤죽박죽·반복 기입
회사들 아예 전문기업에 맡겨 "국세청 직원들도 제대로 몰라"
지난주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한 30대 직장인 강모씨는 며칠 뒤 회사 재무팀 직원에게 “혹시 이혼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했더니 “그런데 왜 ‘한부모’라고 표기를 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연말정산 신고서 작성시 인적공제 항목에 ‘한부모’가 있어 동그라미를 적은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모님이 한 분만 남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부모란 배우자 없이 20세 이하 직계비속이나 입양자를 홀로 부양하는 경우다. 강씨는 “서류 어디를 뒤져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더라”고 말했다.
연말정산에 대한 직장인들이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은 비단 추징금이 늘어서만은 아니다. 거듭된 세법 개정으로 해마다 복잡해지는 연말정산 신고서는 작성 과정부터 직장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정부가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는 하는데, 납세자들의 불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안일하다. 연말정산 서류 작성시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봤다.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는 이들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난관을 만나게 된다. 본인이름이 적힌 인적공제 항목 옆에 기본공제, 그리고 부녀자와 한부모, 경로우대 등의 추가공제를 표기하는 곳이 있다(사진1). 기본공제를 적는 칸은 왜 2개로 쪼개져 있는 건지, 여성의 경우 부녀자에 표기를 해야 하는 건지, 한다면 위칸인지 아래인지 보면 볼수록 아리송하다. 게다가 한부모는 무슨 뜻인지에 대한 별도 설명이 없다. 결국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담당자에게 자문을 구하기 십상이다.
인적공제 바로 옆 칸의 보험료는 ‘건강 고용 등’과 ‘보장성’으로 나뉜다(사진2). 연말정산 간소화시스템에서 증명서류를 출력하면 가입 보험에 대한 보장성 여부는 확인이 가능하다. 문제는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분명 가입돼 있을 텐데도 별도 자료가 없다. 찜찜한 기분에 알아보니 작성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다. 개인이 작성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왜 굳이 포함시킨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적는 순간부터는 계산기가 필요하다. 특히 카드를 여러 개 사용하는 사람은 출력한 사용내역에서 ‘일반’이라고 적힌 것들만 합해 기입을 해야 한다. 전통시장 사용액과 대중교통 이용액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산을 끝내면 별도 페이지의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신청서도 무사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수치를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주의점이 있다. 수치는 같지만 순서가 다르다. 별도 페이지에는 직불카드와 현금영수증을 기입하는 순서가 바뀐다(사진3, 사진4). 앞에 적은 순서대로 그대로 적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연말정산은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원래 연말정산은 첫 페이지만 넘기면 절반은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 번째 장의 ‘4. 그밖에 소득공제’는 올해 연말정산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특히 ‘신용카드 등 사용액’ 부분은 흡사 난수표에 가깝다.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는 1~5를 적을 때부터 계산이 필요하다. 앞 페이지는 개인별인데 이번에는 부양가족까지 합산한 수치를 적어야 한다. “왜 이런 식으로 해놨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제공하는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의 출력 내용이라도 순서가 같아야 하지만 뒤죽박죽 엉켜있다.
진정한 난코스는 7부터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수식이 한층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10번을 적으려면 8번 금액에서 ‘2014년 본인 신용카드 하반기 일반’을 빼야 한다. 게다가 7~10번은 본인이 사용한 금액만 해당된다. 다른 부양가족의 사용분을 합산했던 앞선 사용금액과는 다르기 때문에 헷갈릴 소지가 다분하다. 한시적으로 체크카드 사용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30%에서 최대 40%로 올라가면서 계산법이 복잡해진 것인데, 문제는 연말정산 서류에 구체적인 셈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사진5). 이렇게 복잡한 계산을 완수한 직장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혜택이 늘고 있는 드문 항목 중 하나인 월세 소득공제의 경우도 번거롭긴 마찬가지다. 가장 많은 지적이 나오는 것은 집주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는 점이다(사진6). 구비서류나 임대차 계약서와 주민등록등본의 주소가 일치해야 하는 등의 조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까지 마치면 그래도 칠부능선은 넘었다. 그나마 나머지 항목들은 간소한 편이다. 앞에 적은 내용을 반복해서 적으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드는 의문도 있다. “이미 적은 걸 또 적게 하는 이유가 뭘까”. A기업의 재무회계팀 담당자는 “의료비나 신용카드 관련 별도의 명세서는 개인이 굳이 작성할 필요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비지급명세서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는 적는데 정작 이름을 적는 곳은 없어 형식적인 서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연말정산 관련 팀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B기업의 재무회계팀 관계자는 “국세청 직원들도 정확히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거나 통화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연말정산을 전문기업에 맡기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국세청 본사에서 연말정산을 전담하는 원천세과 직원은 과장 1명과 사무관 3명을 포함, 총 10명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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