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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굶어 죽은 시설 운영자 집유에 그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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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굶어 죽은 시설 운영자 집유에 그친 이유는

입력
2015.0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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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도 장애인인 미신고 시설

법원 "고의성과 강압 없었다"

서울의 한 미신고 장애인 시설에서 50대 남성이 굶어 죽었다. 이 시설 장애인들은 지하철2호선 강남역 인근에서 이른바 ‘앵벌이’까지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시설 운영자에게 집행유예만 선고했다. 법원은 고의성과 강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009년 1월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한 미신고 장애인 시설에 맡겨진 A(53ㆍ정신지체 3급)씨는 2013년 6월 중순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했다. A씨가 잘 걷지 못하자 시설 운영자 맹모(56)씨는 A씨의 아내에게 상태를 알리고 “집으로 데려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돌봐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A씨는 한 달도 못 가 ‘소식(小食)에 의한 영양결핍’으로 숨졌다.

가족도 문제삼지 않았던 이 사건은 지난해 경찰이 시설에서 굶어 죽은 A씨의 사진을 입수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드러났다. 맹씨는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시설을 운영하고, 2012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지체장애 1급 장애인 B씨의 기초생활급여 285만원을 가로챈 사실도 드러났다.

이 시설에 기거하는 장애인 김모(64)씨는 201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다른 동료 지체장애인들의 다리에 고무 튜브를 끼운 채 강남역 인근 길 바닥을 기며 구걸하도록 했다. 김씨는 이들을 차로 실어주는 대가로 1인당 하루 3만5,000원씩 받았다. 검찰은 맹씨를 유기치사와 업무상 횡령, 김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 하현국)는 고심했다. 피해자들 모두 “맹씨나 김씨에게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았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며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맹씨는 손발이 뭉툭해지는 ‘샤르코 마리투스’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고, 앵벌이를 종용한 김씨도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다.

재판부는 25일 맹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김씨에게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맹씨가 A씨를 유기할 적극적 의도가 없었고, 별다른 대가를 받지 않고 B씨를 보호해온 점을 참작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에 대해서는 장애인들을 협박해 구걸을 시키지 않았고, 장애인들도 처벌 의사가 없는 점을 고려했다.

장애인 유기나 앵벌이 동원 등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미신고 장애인 시설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운영자 소유의 건물과 촉탁의사, 조리원 등 전문인력 및 치료시설 등을 갖춘 장애인 시설이라야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승유 라이프라인 장애인자립진흥회 상임이사는 “신고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영세한 사회복지사업가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외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우선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추후 보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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