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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개혁 '아메바 경영'으로 흑자전환… JAL 다시 날다

입력
2015.01.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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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2조엔에 자본 완전 잠식

경영의 신을 구원투수로

아메바 경영 도입해 조직 개편

2년 6개월 만에 최단기 재상장

2010년 12월 31일. 일본항공(JAL)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겐 느닷없이 해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일본항공(JAL)의 상징인 학(鶴)이 새겨진 핑크빛 종이에는 ‘회사의 경영 사정으로 2011년부터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직원은 무려 165명. 이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법원에 해고무효소송까지 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한때 대학생의 취업 희망 1순위였던 JAL은 천문학적인 적자로 2010년 1월19일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기업회생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JAL의 부채규모는 2조3,221억엔(20조5,000억원). 자본은 완전잠식 상태였다. JAL은 기업회생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전체 보유 항공기의 3분의1인 95기를 매각하고, 국내외 노선 45개를 폐쇄하며 직원도 3분의 1인 1만6,000명을 줄이기로 했다. 기업회생지원기구는 인원정리를 위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나, 신청자가 부족하자 결국 연말 조종사와 승무원 등에 대한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로부터 4년. JAL은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2011년 3월 결산 당시 영업이익은1,866억엔으로 당초 목표액보다 약 1,200억엔을 웃돌았다. 2012년 영업이익은 1,716억엔, 2013년엔 저비용항공사(LCC)의 약진에도 1,662억엔을 거둬들였다. 거의 완벽한 회복이었다. 과연 JAL에는 이 기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같이 당찬 부활의 이륙이 가능했던 것인가.

기본으로 돌아가라

“임직원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다. 주인의식이 없었다. 민간회사와 같이 채산성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 파산선고가 내려도 ‘대마불사’에 대한 기대감에 빠져 있었다. 사스와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어져 여행수요가 감소, 적자규모를 키웠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그 원인을 찾아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단 임시방편적 대응에만 급급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올해로 32년간 JAL에서 근무해 온 히메지 다카히로(55) 부사장(한국지사장)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2010년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JAL은 당시 재무구조부터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파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조건을 모두 갖춘 부실 덩어리였다. 영업과 운항 등 부문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 바빴고, 조직 문화는 관료주의에 찌들어 정치권 입김에 경영의 축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다. 임직원들은 불황이 적자의 원인이라며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그런 JAL은 결국 쓰러졌다. 일본 정부는 JAL의 재생을 위해 구조조정을 이끌 새로운 구원투수가 필요했고 삼고초려 끝에 이나모리 가즈오(당시 78세) 교세라 명예회장을 영입했다.

교세라는 일본 강소기업들이 집결한 교토를 근거지로 한 일본 세라믹 관련 기기업계 1등 기업. 이 회사 창립자인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선(禪) 불교를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과 ‘아메바 경영’이란 독특한 방식을 통해 자타가 인정하는 ‘경영의 신’으로 불렸다. 일본능률협회가 선정한 ‘이상적 경영자’로 4년 연속 1위에 올랐던 그가 JAL의 부활을 위해 경영전선에 나선 것이다. 히메지 부사장은 “사실 이나모리 회장의 아메바 경영 서적들을 읽으면서도 그의 이상적인 경영철학과 논리가 과연 급박한 위기상황에 처한 JAL에 얼마나 통할지 의구심이 컸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은 취임 다음날부터 경영진들과 마라톤 회의를 열고,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JAL의 문제점을 꼼꼼히 파악했다. 당시 일본 도쿄 하네다ㆍ나리타 공항의 운항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JAL스카이의 책임자였던 히메지 부사장은 갓 취임한 이나모리 회장에게 JAL스카이 운영에 대해 보고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그날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밤 10시쯤 JAL스카이에 대한 보고를 할 무렵 사람들은 녹아떨어져 있었으나 이나모리 회장 혼자만 볼펜을 들고, 설명을 빠짐없이 듣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다. 회계 엑셀 파일을 직접 확인하고 주요 포인트를 지적하는 모습은 참석자 전원이 그를 무조건 존경하게 만드는 묘한 리더십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가 JAL에 대해 내린 진단은 간단했다. 경영철학은 물론 목표와 전략도 없는 한 마디로 무주공산의 부실 덩어리라는 것. 그는 기업회생을 위해선 기초부터 모든 것을 다시 다져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과 목표의식, 가치관, 판단 기준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취임 4개월째부터 경영진을 대상으로 17회에 걸쳐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의 교육은 인간이 행동하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 사업하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등 철학적인 이슈나 배려, 신뢰, 진정성, 지행합일, 용기 등 삶에 대한 성찰과 가치관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둔 다급한 시점에 한가롭게 도덕 교육을 받는 것에 경영진들은 반발했다. 그래도 열정적이고 끈질기게 설득하며 다가서는 그의 깊이 있는 인생철학과 가치관에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히메지 부사장은 “이나모리 회장의 철학은 명확했다”며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나 태도 같은 확고한 기준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맞부딪쳐도 정도(正道)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를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길 동기를 부여했다”고 회고했다.

일례로 JAL은 당시 기업회생 지원을 받기 위해 글로벌 얼라이언스 제휴 상대를 재검토하는 작업을 펼쳤다. JAL은 아메리칸항공과 제휴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 델타항공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은 “사람이 신용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정도를 지키지 못하면 존경받는 장사꾼이 될 수 없다”며 “오랜 파트너를 단순히 이해관계 때문에 버리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JAL은 아메리칸 항공이 속한 ‘원 워드’에 남아 지금도 긴밀한 제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상대의 신뢰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절대 가치란 없다

이나모리 회장의 철학과 의식개혁 교육은 경영진에 이어 이어진 후속 교육을 통해 임원과 중간관리자, 직원들을 차츰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앞세운 그의 교육은 JAL의 도덕성을 바로잡아가기 시작했고 책임회피와 이기ㆍ배타주의, 예산남용 등 기업문화 전반에 배어 있는 악습의 고리를 끊는 초석이 됐다. 이를 기초로 JAL은 그의 철학을 담은 작은 수첩 형식의 ‘JAL 필로소피’라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이를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며 하나의 목표의식과 인간다운 삶의 태도, 명확한 가치관 등을 공유하며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의 철학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선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취임 첫날 직원들에게 “경영의 목적은 모든 직원의 행복 추구”라고 밝혔다. 오랜 노사갈등으로 점철된 JAL의 기업문화를 바꾸고 노사 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직원의 행복 추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직원들이 일과 업무에 대해 행복하게 느끼고 열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JAL의 회생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하기 전 기업재생지원기구는 1만6,000명을 줄일 것을 이미 결정했고, 채권단과 정부는 이보다 더 많은 인원감축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의 교세라는 직원들에게 평생직장으로 정평이 나 있고, 해고란 그의 경영철학과는 상반된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고심 끝에 더 이상의 인원 감축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JAL의 회생과 나머지 3만2,000여명 직원들의 고용을 위해 인원감축을 추인했다. 인원감축은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포함, 자회사 매각과 분사 등을 통한 전직 등으로 이뤄졌고 그로서는 불가피한 결단이었다. 히메지 부사장은“JAL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나모리 회장의 결단은 JAL만이 아니라 일본 경제를 위해서도 불가피했던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나모리 가즈오(왼쪽) JAL 명예회장이 2010년 2월 취임 직후 JAL항공 정비부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JAL 제공
이나모리 가즈오(왼쪽) JAL 명예회장이 2010년 2월 취임 직후 JAL항공 정비부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JAL 제공

아메바 경영

한쪽에선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의식개혁을 통한 새로운 성장과 변화의 기운은 조직개편 단행과 새로운 경영방식의 도입을 통해 JAL의 회생을 위한 도약의 모멘텀을 만들어 갔다. 핵심은 이나모리 회장의 ‘아메바 경영’이었다. 몸의 수많은 세포가 제각각 활동하며 조화를 이루듯 회사의 구성원들이 팀을 이뤄 마음을 화합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 간다는 게 아메바 경영의 요체다.

히메지 부사장은 이런 아메바 경영의 목표를 ▦전 직원이 참가하는 경영 실현 ▦인재육성 ▦시장과 직결된 부문별 채산제도의 확립 등 3가지로 집약했다. 채산제도란 ‘매출은 최대화, 비용은 최소화’ 하는 수익성 중심의 경영 수지개선 원리에서 출발한다. 이에 맞춰 2011년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노선별 수지를 책임지는 노선 본부 신설을 시작으로 각 부문별 조직 기능도 아메바가 분열하듯 세밀히 나뉘었다. 사업부문은 수익을 올릴 여객판매본부와 화물ㆍ우편본부 등으로 나뉘었고, 사업지원 부문은 공항, 객실, 운항, 정비 등을 중심으로 개편됐다. 각 부서 간 수익을 책임지는 구조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부문별로 더 작은 단위의 아메바들이 생겨났다. 히메지 부사장은 “전 직원을 10명씩 한 팀으로 나뉘어 월말마다 서로 수지 개선을 비교해 팀별 승패를 측정했다”며 “영업부문 직원들은 매출 극대화에 노력했고, 생산부문은 경비절감을 넘어 수익 창출에도 나섰다”고 했다. 또 노선별 수지의 신속한 현황파악과 대응 전략의 실행을 통해 부문별 전체 수지관리를 매월 점검하는 성과 보고회가 열렸다. 히메지 부사장은 “성과 보고회에는 임원과 아메바별 책임자가 수지 현황을 파악해 이나모리 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했고 이를 통해 경영자로서의 엄격한 리더십 교육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직원들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각 아메바별로 매출과 비용 등 수지 성과에 대한 경영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자신이 운동경기에 참여한 선수인 양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사용하고, 기름때가 묻은 장갑을 빨아가며 비용절감에 나서자 회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히메지 부사장은 “2011년 영업이익이 처음 1,000억엔을 돌파하자 더 수익을 높이려는 직원들의 노력과 의식이 고조됐다”며 “JAL 임직원들은 도덕성의 재무장과 아메바 관리시스템의 운용 등으로 1,000여일 만에 JAL이 새롭게 태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피력했다.

JAL은 파산보호신청 후 약 2년 6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19일 사상 최단기간의 기록으로 재상장에 성공했다. 히메지 부사장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JAL이 도산했기에 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시장 환경의 변화와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의식개혁이었고 도산이라는 쓴맛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겸허하게 반성하고 이나모리 회장에게 귀를 기울여 회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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