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음향시설은 옥의 티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 / 이 땅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자 /오, 루시퍼!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만져볼 수 있게 해주오, 에스메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대표하는 노래 ‘벨(belleㆍ‘아름답다’는 뜻)’의 마지막 구절이다. 한국 초연 후 10년 만에 다시 온 오리지널팀의 공연을 표현하는 데 ‘벨’만큼 적절한 수식어가 있을까. 오랜 기다림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성당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 대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가 동시에 한 여인을 사랑하며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여기에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15세기 유럽의 사회상을 적절히 녹여내 격변하는 시대와 흔들리는 개인의 내면을 탁월하게 대비시켰다.
10년간 숙성시킨 와인처럼 이번 내한 공연은 연기, 음악, 무대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더욱 완벽해졌다. 송스루 뮤지컬(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끌어가는 뮤지컬)인 만큼 50여곡에 달하는 노래가 연이어 울려 퍼짐에도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 갈채가 나왔다. 노래마다 만듦새가 훌륭하고 이를 전달하는 배우들의 가창력 또한 환상적이기에 가능한 반응이다. 프랑스어의 비음과 연음은 원곡의 부드러운 정서를 확실하게 살려냈다.
노래와 안무를 철저히 분리시키는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연출 문법도 빛을 발했다. 화음과 군무를 담당하는 영미 뮤지컬 속 앙상블과 달리 전문 댄서들은 독립된 주체로 극이 내포한 메시지를 다양하게 전달했다. 댄서와 애크로뱃, 브레이커들은 대형 종에 매달려 공중을 떠다니고 성당 벽면을 오르내리는 등 아찔한 장면으로 극의 위태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1막 초반 연달아 나오는 노래 ‘미치광이들의 축제’와 ‘미치광이들의 교황’에서 배우와 댄서들이 저마다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장면은 관객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화려하다.
15세기 프랑스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현대적인 콘셉트를 택한 무대 세트는 위고의 소설이 과거에 매몰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또 성당 벽면을 기본 골격으로 세운 무대는 그 흔한 턴테이블 한 번 사용하지 않고 극의 흐름에 따라 감옥과 침실 등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막 뒤의 무대 세트가 바뀌는 동안 배우와 댄서가 완벽한 연기를 선보여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거나 바닥에 설치한 레일을 사용해 대형 석상을 순식간에 무대 중앙으로 옮겼다.
모든 면에서 극찬할 만한 뮤지컬이지만 세종문화회관의 음향 시설은 옥의 티다. 클로팽과 에스메랄다가 ‘에스메랄다, 너도’를 부를 때 배우들의 마이크에 잡음이 들어가거나, 1막 중간 중간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낸 베이스는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가 아닌 반주음악(MR)인 만큼 기술적인 면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하는 대목이다. 다음달 2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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