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 방문 일정을 단축하는 대신 27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다. 이번 결정은 형식상 고(故)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전 국왕의 타계를 애도하는 목적이지만, 이란 핵 협상 진전과 친미 성향 예멘 정권 붕괴 등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새 국왕과 오바마 대통령이 첫 만남에서 어떤 합의를 이룰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 방문을 마치고 27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로 건너가 사우디의 새 국왕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당초 조 바이든 부통령이 조문 대표단을 이끌기로 했으나 공교롭게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를 떠나는 날과 바이든 부통령의 사우디 일정이 겹쳐 일정을 조정했다”면서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하고 바이든 부통령은 워싱턴에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P, 블룸버그 통신 등도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 방문 마지막 날인 27일 수도 뉴델리에서 연설한 뒤 원래 예정됐던 타지마할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사우디를 향해 출발한다고 전했다. 타지마할 소재지인 아그라 당국 측도 방문 취소를 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살만 국왕과의 첫 만남에서 전 국왕의 타계를 애도하면서 압둘라 국왕 시절 다소 소원해진 양국 간의 관계 증진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에 앞서 이날 인도로 향하는 전용기(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살만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압둘라 국왕의 타계를 애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인도에 대한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사우디 행을 택한 것과 관련,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와 이스라엘, 이란 핵협상 등을 둘러싸고 빚어진 사우디와의 이견 조율을 시도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압둘라 전 국왕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돕지 않는 친구는 해치지 않는 적보다 나쁘다”라며 미국에 정서적으로 우호적이었지만 오바마 집권 이후에는 미국을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아사드 정권 축출에 소극적이고 사우디에 맞서는 이란과 핵 협상을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또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효과적으로 압력을 가하지 못하는 것에도 불만을 표시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전 국왕을 대신할 살만 국왕과의 만남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 전선에서 두 나라의 공조를 확인하는 한편, 협상으로 이란 핵을 제거하는 게 사우디 안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아시아 중시정책과 셰일석유 혁명으로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미국의 안보 협력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불식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정상의 만남에도 불구, 두 나라 관계가 이전처럼 단단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문은 “냉전시대에 보여줬던 동맹관계 대신,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협력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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