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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어느 스리랑카 노동자의 꿈

입력
2015.01.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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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머문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얼마 전 야생 코끼리를 만나기 위해 우다왈라위 국립공원을 찾아갔다. 사파리를 예약해놓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중이었다. 한 남자가 트럭을 세우더니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반갑습니다”라는 인사가 돌아왔다. 서른네 살의 청년 투샤라는 부산에서 5년 8개월간 일을 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가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아내와 아기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날 저녁에 가겠다고 했다. 현지인에게 받은 첫 초대여서 마음이 들떴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작은 선물을 챙겨 그의 집을 찾아갔다.

아내 크리샨티, 2살 된 아들 디누완과 사는 그의 집은 생각보다 허름했다. 부산의 선박회사에서 일해 번 돈으로 이 집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도중에 돈이 떨어졌는지 집은 덩치만 크게 올라가다 말았고, 집안은 심란할 정도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마감도 못한 콘크리트 바닥에 놓인 인조 가죽소파와 TV, 냉장고 정도가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부엌은 마당 한 켠에 판자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가스렌지도 없어서 장작불에 요리를 하고 있었다. 코코넛 밀크를 넣은 커리가 익어가는 냄새가 조금씩 진해졌다. 괜히 없는 살림에 부담만 된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저녁을 기다리고 있자니 투샤라가 다가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요.” 그는 어설픈 한국말로 열심히 부탁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망고를 따다 파는데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한국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가 내게 원한 건 출입국 사무소에 전화해 그의 신분을 보증해주는 거였다. 그 순수하고 뜨거운 갈망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다. 나 또한 투사라 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그런 도움이 아무 소용없음을 설명했다. 내가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실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한국에서 나쁜 일은 없었느냐는 내 질문에 좋은 사람만 만났다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으니. 그때까지 나는 그의 유일한 끈이었는데 어찌 내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 일한 6년 동안 부당한 대접과 차별에 잠을 이루지 못한 무수한 밤이 그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그에게 ‘좋은 나라’였을 것이다. 그의 조국에서는 평생 만져보기 힘든 돈을 벌게 해주었으니. 그 돈을 보내는 재미에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으리라. 그가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한 집안의 기둥이었을 것이다. 영리한 동생을 공부시키고, 누이를 시집 보내고,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일 모두가 그가 보낸 돈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이 끝나 돌아온 그의 고국은 죽어라 일을 해도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아내 크리샨티가 이야기하듯 투사라는 여전히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밖에.

보채는 아이를 달래가며 밥을 안치고, 하나뿐인 화덕에 한 가지씩 요리를 하며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던 크리샨티.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산수화가 그려진 부채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물건인가.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고 장사하느라 부채를 펼치며 앉아있을 시간이나 있을까. 나를 위해 정성껏 저녁을 차려 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망고 몇 개를 사들고 오는 일밖에 없었다. 쓰린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 나는 괜히 그의 가난에 화가 났다. 다른 스리랑카 남자들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번듯한 게스트하우스를 열기도 했던데 왜 아내에게 가스렌지조차 사주지 못했단 말인가.

어느새 대한민국은 많은 스리랑카 청년들에게 꿈의 나라가 되었다. 한 집안의 유일한 희망인 또 한 명의 투샤라가 지금 안산에서, 거제도에서,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의 고단함과 이방인의 설움을 견디고 있을 그들에게 부디 내 나라의 겨울이 너무 매섭지는 않기를. 그래서 그들이 스리랑카로 돌아가는 날, 돈 뿐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도 함께 품고 돌아갈 수 있기를.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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