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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 잔디는 한국보다 싱싱할까

입력
2015.01.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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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 주택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잔디일 것이다. 땅이 넓어서겠지만 웬만한 중산층 주택에는 한국 기준으로 10여 평 남짓한 잔디가 있다. 미국에 처음 온 한국 사람에게는 집 마당의 푸른 잔디가 큰 부러움이다. 미국 사람들도 잔디를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 들여 가꾼다. 그 때문일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한국 속담의 미국식 표현은 ‘울타리 너머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이다.

남이 가진 게 내 것보다 좋아 보이는 건 국가 사이에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큰 사건ㆍ사고가 터질 때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비교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건 미국이 한국의 ‘잔디’를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사교육 열풍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높게 평가해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신년연설에서도 한국을 미국이 배워야 할 몇 안 되는 나라로 꼽았다.

백악관은 20일 인터넷으로 신년 연설을 중계 방송하며, 대통령 발언을 뒷받침하는 도표나 그래프를 함께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급 출산휴가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한국은 1985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자, 한국을 일본 영국 독일과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반향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실체보다 부풀려진 연말정산 파동과 맞물리는 바람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부자증세’가 주목을 받고, 그의 대국민 소통 능력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말 미국 ‘잔디’가 한국보다 푸르고 싱싱할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2013년 기준ㆍ67.2%)이 한국(55.6%)보다 11.6%포인트나 높은데도 출산휴가가 없었던 것처럼 미국 세금체계는 한국보다 느슨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부자증세는 23.5%인 최고세율을 28%로 인상하고 주식 등 유산 상속분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이며, 상속세율은 30억원 이상부터는 50%다. 미국 기준으로 따지면 이미 한국은 부자증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과세도 마찬가지다. 구글, 애플, 스타벅스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미국 세법의 허점을 이용해 천문학적 이익의 태반을 해외에 유보하는 방식으로 과세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은 세법을 정비해 향후 10년간 3,200억달러(350조원)의 세금을 받아내겠다는 것이지만, 다국적 기업 반열에 오른 삼성이나 현대ㆍ기아차가 한국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면 여론 뭇매로 만신창이가 됐을 것이다.

대통령의 소통능력도 한국이라면 먹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자 사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증세’를 명분으로 비과세감면을 없애려 하지만, 대통령 부부가 감면 규정을 이용해 과거 두 딸을 위해 24만달러(2억7,000만원) 학자금을 적립한 사실을 공개했다. 우리 대통령이 이랬다면 제 아무리 화술이 뛰어나도 여론의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이달 중순 지하철 객차에 연기가 차는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십 여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기관사는 승객들을 차 안에 머무르라고 유도해 사고를 키웠고,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용감하고 재빨랐던 미국 소방대원들은 현장에 45분만에 늑장 도착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이웃집 애가 더 공부를 잘해 보이는 게 인지상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 내 떡이 작고 우리 애가 공부 못하는 건 아니다. 한국 ‘잔디’에서 살다가 울타리 건너 미국 ‘잔디’를 잠시 밟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잔디도 영 나쁜 건 아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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