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고경일씨 딸 혜원·혜민양, 수요집회서 받은 충격 그림·시에 담아
다음달 독일·파리 이어 서울서 전시
우리들의 분노와 억울함에도/할머니들의 뜨거운 눈물에도/차디찬 바닥에서의 외침에도/창문 없는 일본 대사관 (고혜원‘일본대사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갔던 초등학생, 중학생 자매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마음을 쉽사리 진정시키지 못했다. 할머니들의 외침에도 미동 하나 없는 일본 대사관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자매는 집에 돌아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그림과 시를 떠올렸다. 위안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 ‘위니미니’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상명대 만화과 교수이자 시사만화가인 아빠(고경일ㆍ47)를 따라 전시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떠올린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계획을 기특하게 여긴 아빠는 전시회 장소를 섭외했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럽에서 전시를 열었던 고씨가 당시 맺은 인연을 통해 한인단체에 취지를 설명했고, 그래서 독일,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생 고혜원(15), 초등학교 6학년생 고혜민(13) 자매다. 전시회의 영감을 얻기 위해 21일 서울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1,162회 수요집회에 참석한 자매는 “저희가 함께 할께요!”, “할머니 힘내세요!”라는 문구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나비를 그려 넣은 피켓을 흔들었다. 자매의 표정에는 나이답지 않은 진지함이 묻어났다.
“처음 수요집회에 왔을 때 할머니들께서 꽉 안아주셨어요. 꼭 도움이 되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제가 좋아하는 게 그림이니까 그림으로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고 싶었어요.”
화가가 꿈인 혜원양은 그림에는 자신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시집읽기를 좋아하던 동생 혜민양은 시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두 자매는 전시를 위해 각각 그림 15작품, 시는 제한 없이 써나가기로 했다. 현재 3분의 2정도 준비된 상태다. 한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짧게는 하루 길게는 4, 5일 정도가 걸린다.
자매는 주로 박물관이나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 혜민양은 “박물관에 가서 떠오르는 생각을 집에 돌아와서 바로 메모해요. 그걸 보면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거예요. 위안부에 관련된 시집을 읽는 것도 정말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는 데 든든한 지원군은 부모님이다. 문학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 하윤정(43)씨와는 시에 대해 의논하고 아빠에게는 그림 표현 방식을 묻는다. 두 자매는 다음달 독일, 파리 전시에 이어 3월에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다.
“할머니들이 ‘사실을 말하고 빨리 사죄하라’고 외친 지 벌써 1,000회가 한참 넘었어요. 그런데도 똑같다는 게 이해가 안가요. 할머니들이 하루 빨리 일본한테 사과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희 전시회가 그 시간을 하루라도 앞당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