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동 철거민 지석준·유영숙씨, 용산 연대 갔다가 다치고 남편 잃어
엄동설한에 천막생활 여전히 투쟁 중
서대문의 경찰청 맞은편, 번듯한 고층건물 뒤에 각목과 비닐로 얼기설기 지은 천막이 하나 있다. 롯데건설이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중구 순화동 1-1 구역, 공사장 펜스 앞에 자리잡은 이 천막에 18일부터 두 사람이 살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숨진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55)와, 그때 남일당 건물에서 추락해 다친 지석준(45)씨다. 순화동에서 각각 식당을 하던 유씨 부부와 지씨는 2003년 이곳이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났다. 그 뒤 용산 재개발로 상가 세입자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서자 연대하러 남일당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순화동으로 돌아와 천막을 친 것은 시공사 부도로 착공도 안 됐던 공사가 시공사를 바꿔 본격 시작됐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6주기인 20일 저녁 농성천막을 찾았을 때 두 사람은 불도 없는 컴컴한 도로에 주저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라면과 햇반이 주식이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좁고 낮은 천막 안에 유씨는 남편의 영정을 모셔와 걸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전기가 없어 천장에 칸델라 2개를 걸었다. 바닥의 냉기를 가시게 하려고 스티로폼과 담요를 깔았지만, 추위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지씨는 6년 전 용산에서 다쳐 양쪽 발목뼈가 부서졌다.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수술을 받았고 또 받아야 한다. 유씨는 지씨를 동생처럼 여긴다. 그날, 남일당에 있던 남편이 걱정돼 전화했을 때 망루에 함께 있었던 지씨는 “형(고 윤용헌씨)은 건물 밖으로 나갔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유씨는 남편이 경찰특공대에 맞아 죽었다고 믿는다. 그후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몸이 아파 일을 못하고 있다. 지씨도 일을 할 몸 상태가 아니어서 부인이 옷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유치원생이던 아들은 아빠가 용산에 간 건 알지만 왜 다쳤는지 지금도 모른다.
두 사람은 “싸울 수 있어서 그래도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될 거라고, 가정주부인 내가 투사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내 가정만 행복하면, 장사만 잘 되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용산참사 후 경찰의 쌍용자동차 공장 진압 광경을 TV로 봤을 때 피가 솟구쳤다. 노동자든 철거민이든 다 살려고 싸우는 건데, 요즘 툭하면 우리더러 종북이라고 한다. 세월호 유족들도 종북이라고 한다. 우리가 왜 종북이냐.“
순화동에서 용산으로, 다시 순화동으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용산도 순화동도 끝나지 않았다.
오미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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