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늦는 워킹맘 자녀 꺼리는데..." 보육시설 전일제 이행 감독 없이 전업주부 시간제 유도 효과 의문
가짜 워킹맘 걸러 낼 장치 없어, "포퓰리즘 무상보육이 근본적 문제, 줬다 빼앗으면 진통 겪게될 것"
정부가 영아(만 0~2세)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보육 지원을 늘리고 전업주부의 불필요한 어린이집 이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보육체계를 뜯어고치겠다고 밝히자 전업주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만 2세까지는 가정양육이 부모와의 유대감과 정서 발달에 좋다’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하지만, 대선 공약에 따라 이미 어린이집 보육비 지원을 크게 확대한 상황에서 가정양육 권장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인지 우려되고 있다.
7개월 된 아들을 둔 주부 김모(29)씨는 “전업주부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한다는 정부의 인식에 마음이 무겁다”며 “가뜩이나 아동학대로 불안한 어린이집에 차 마시려고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성토했다. 34개월짜리 둘째 아이를 키우는 주부 손모(34)씨는 “양육수당을 두 배인 20만원을 준다 해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며 “주부들이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이미 길들여져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보육비 22만~77만7,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어 현재 10만~20만원 수준인 양육수당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어린이집에 안 보내면 손해’라는 인식을 지우기 어렵다. 또 아이에게는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정서발달형 놀이를 하며 사회성을 키울 활동이 필요하며, 양육자가 아프거나 재취업 준비를 하는 등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주부들의 목소리다.
정부는 양육수당 인상과 함께 맞벌이 가정 자녀는 전일제 어린이집을, 전업주부 자녀는 시간제를 이용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인데 실효성이 문제다. 어린이집부터 퇴근이 늦은 맞벌이 가정의 자녀를 꺼리기 때문이다. 1세 아들을 키우는 주부 정모(35)씨는 아이를 키우려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어린이집 전일제는 워킹맘만 이용하는 게 맞지만,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4시 이전에 (아이를) 찾아갈 수 있죠?’라고 묻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14개월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려 입소신청하고 대기 중인 직장여성 김모(32)씨도 “대기순번이 300번대인데 엄마들 사이에선 어린이집이 전업주부 순서를 앞당긴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양육수당 인상이 답이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으면서 워킹맘을 꺼리지 않는 어린이집을 늘리거나 감독하는 게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양육수당을 대폭 인상해도 육아휴직이 발목을 잡는다. 직장여성 김모(36)씨는 “육아휴직도 썼고, 남편의 직장은 (육아휴직을 쓸) 분위기가 아니어서 답이 없다”며 “전업주부와 워킹맘간 나누기 입소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혜영 창원대 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양육비와 보육비의 문제보단 맞벌이 부부가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법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로 여부를 확인하는 일도 쉽지 않다. 정씨는 “허위 재직증명서를 떼 오는 전업주부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는 “일본처럼 ‘가짜 워킹맘’을 걸러낼 세밀한 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8년에는 소득하위 15%에만 보육료를 지원했지만 대선을 앞둔 2011년 정치권이 밀어붙여 2012년부터 소득에 상관 없이 0~2세에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복지부와 전문가들은 영아는 가정양육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표 계산이 앞섰다. 이 기간 어린이집은 3만3,400여곳에서 4만2,500여곳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0~2세 어린이집 이용률은 66.1%까지 올랐다. 이미 전일제 어린이집을 널리 이용하는 전업주부들에게 이용을 제한할 경우 반발은 더 커질 게 뻔하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애초에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으로 무상보육을 밀어붙인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줬다 빼앗는 데서 오는 진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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