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이전 국왕들과 개혁성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제한적으로나 사우디에서 민주화를 진전시켰고 개방정책으로 경제개발을 이끌었다.
23일 중동 전문가들과 외신에 따르면 압둘라 국왕은 미약한 여권을 신장하는 데 노력하는 등 전반적인 인권 개선과 참정권 확대에 공을 들였다. 2013년 1월 국회에 해당하는 법률 심의자문 기구인 슈라위원회위원 150명 중 20%인 30명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왕령을 발표했다. 2011년엔 일명‘아랍의 봄’으로 분출한 민주화 요구에 발맞춰 여성의 참정권을 승인했다. 이듬해엔 여성 선수를 올림픽에 출전하도록 첫 허용했다. 재위 첫 해인 2005년에는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통해 지방행정자문회 위원 592명을 선출했고 여성을 공직에 기용했다.
사우디 여성의 사회활동을 권장하며 직업을 갖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형식적이지만 시민들의 불만 사항을 직접 듣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계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CNN은 “보수적인 왕정 국가에서 여성의 자유를 신장시켰지만 과감한 여권 향상에는 부족했던 ‘신중한 개혁가’”라고 평가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압둘라 국왕은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2013년 6월29일부터 주말을 기존 목ㆍ금요일에서 국제적 교류 증가에 발맞춰 금ㆍ토요일로 변경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걸프 지역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이뤄진 조치였으나 사우디 국민들 입장에선 혁신이었다. 올해부터는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개방하기로 했다.
사우디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한 것도 왕세제 시절 그의 의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유 수출로 축적된 자금력으로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주도했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자국민 일자리 창출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뒀다.
일각에서는 압둘라 국왕 사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개혁적인 목소리가 뿜어져 나와 민주화가 좀 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는 중동에서 미국 이해관계의 충실한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대가로 왕정을 공고히 유지해 오고 있다. 본격적인 민주화 등 폭넓은 개혁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주류다. 사우디는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민주화 열풍에 휩쓸렸던 ‘아랍의 봄’ 때도 한 발짝 비켜나 있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보수성이 강한 왕정을 유지하려는 관성에다 개혁세력 못지않게 보수적인 종교 세력들이 강하게 결집해 있어 민주화 수준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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