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인가 / 송호근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400쪽ㆍ1만5,000원
미국 대통령은 보통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말문을 여는 반면 우리 대통령은 ‘국민’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전쟁이나 재난처럼 애국심을 고취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에만 국민을 강조하는데 한국은 시도 때도 없이 국민을 찾는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아직 국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19세기 서구에선 지배층에 맞서 진취적ㆍ평등지향적 윤리를 내세우며 시민정신을 길렀지만 우리는 구한말의 혼란과 국권상실,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상적인 근대 시민사회 구축의 기회를 놓쳤다. “국가의 권력은 시민에게 위임 받은 것”이라는 시민사회론의 명제가, 그래서 한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시대에 개인은 권력의 발원체가 아니라 권력의 종속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시민사회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들어선 국민국가다. 국가의 모든 일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는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국민으로 동원된 채 21세기를 맞이했다. 시민정신의 출발점인 공존의 정신, 공익의 가치, 평등 지향적 윤리는 국민정신에 막혀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저작 ‘시민의 탄생’을 통해 조선의 인민이 근대적 개인을 거쳐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한 저자는 ‘나는 시민인가’에서 다시 시민의 의미를 묻는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뒤 스스로에게 “나는 시민인가” 질문하고선 “시민, 더욱이 학식을 갖추고 공익에 긴장하는 ‘교양시민’이라고 응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은 세월호를 구하지 못한 한국 국민의 반성적 성찰인 셈이다.
네 개의 단락으로 나뉜 책은 이렇게 저자의 사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시민정신을 생각하며 자신을 냉정하게 책망한다. 아내의 화단에 핀 꽃 이름을 매번 잘못 부르고 가족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이사 갈 새 집을 결정하는 등 공동생활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자신을 꾸짖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지켜 보며 이성이라는 견고한 철옹성을 벗어나 신심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자문한다.
송 교수는 한국사회가 사익과 공익의 균형적 결합체로서 공공성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교양시민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사회는 계층 상승을 위한 무한경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저자는 이제 국민에서 벗어나 진짜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익에 몰두하고 국가권력의 이익에 동원되는 국민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개인적인 에세이에서 사회적 발언을 담은 칼럼, 토마 피케티와 나눈 인터뷰까지 서로 다른 성격의 글이 섞여 있다. 저자는 “사적 초상에서 공론장으로 나간 경로를 차분히 걷다 보면 나의 서툴고 미숙한 시민성이 드러날 것”이라며 독자의 이해를 구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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