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쁨4 - 오페라
롤랑 마뉘엘 지음ㆍ이세진 옮김
북노마드 발행ㆍ1만6,800원
“3막에 저의 두뇌와 재주를 얼마나 쏟았는지 저 자신이 3막으로 변해 버린다 해도 놀라지 않을 지경입니다. 오페라 한 편을 쓰고도 남을 재주를 이 하나의 막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아마 그 어떤 장면도 이렇게까지 흥미진진하지는 않을 거예요…”(173쪽)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제 3막을 완성한 모차르트가 평소의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는 팽개쳐두고 아버지한테 쓴 편지의 일부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악비평가인 롤랑 마뉘엘과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나디아 타그린. 클래식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는 마뉘엘, 동감을 표하다 틈틈이 송곳 같은 질문과 반론으로 맞서는 타그린이 끌고 가는 말의 재미가 대담의 현장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준다. 1944년부터 1961년까지 667 차례에 걸쳐 프랑스 라디오에서 매주 일요일 방송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0세기 트로푸스에서 20세기의 스트라빈스키까지 시대를 풍미한 작곡가들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이웃의 이야기처럼 풀려 나온다. 인용문에 버금가는 숨은 일화도 곳곳에 숨어있다.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통섭적인 내용의 대담은 두어 세대 이전 지식인들이 현재보다 지적으로 더 자유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부추긴다. “그 빛나는 활기, 그 냉소적인 흥취가 묘하게도 보나파르트 정복 시대의 이데올로기, 스탕달의 주인공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단 말이죠.”(216쪽) 로시니의 오페라를 논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처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유럽 특유의 인문주의다.
문화에 대한 두 사람의 깊은 이해는 가히 압도적이다. 둘이서 치고, 받고, 얽히는 모습의 속내까지 닿기 위해서는 깊은 문화적 식견이 요구된다. 이들이 지난 세월을 종횡으로 재편집해 들어가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며 더디 흘러가는 교양의 시간을 체감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여기서는 사이버 문명은커녕 대중 문화의 범람이라는 21세기적 상황은 논외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담하던 당시에도 오페라라는 덩치 큰 예술은 존립의 위기 속에 놓인 예술 장르였다. “우리 세계의 모든 가치들이 그러하듯 오페라도 지금 위태로운 국면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봅시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는 현재를 한탄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은밀히 일궈나가지요.”(365쪽)
“오페라의 역사는 세속화, 점진적인 탈신성화의 역사”(12쪽)라는 등 서양의 음악, 나아가 문화 전반을 통찰하는 명언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20세기 전반 유럽 지성들의 사랑방을 폐쇄회로 TV로 들여다 보는 듯한 즐거운 착각은 덤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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