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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평균점수 95점… 늦깎이 공부벌레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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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평균점수 95점… 늦깎이 공부벌레 "만세"

입력
2015.01.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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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넘은 나이로 2년 전에 입학

매일 칠판에 수업 내용 필기하는 등 학업 태도 우수해 서울학생상 수상

대안학교 성지중의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는 '늦깍이 공부벌레' 조재행씨가 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성지중 교실에서 성적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현 인턴기자(국민대 사법학과 3)
대안학교 성지중의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는 '늦깍이 공부벌레' 조재행씨가 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성지중 교실에서 성적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현 인턴기자(국민대 사법학과 3)

“아버지 성적표 좀 볼래? 정말 열심히 한 거 맞지?” 환갑을 훌쩍 넘긴 중학생 조재행(66)씨는 사립 명문대를 졸업한 큰 아들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수줍게 성적표를 내미는 손은 세월의 더께로 거칠고 주름졌지만 표정만큼은 딱 중학생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아버지처럼만 공부했으면 너도 더 좋아졌을 것 아니냐”며 아들에게 눈을 흘겼다.

만학도와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성지중에서 ‘늦깎이 공부벌레’로 유명했던 조씨가 다음달 5일 드디어 졸업한다. 그것도 한 손에는 중학교 졸업장과 개근상을, 다른 손에는 서울시교육감이 주는 상장을 들게 됐다. 이 ‘서울학생상’은 성적이 우수하고 학업 태도가 좋은 성지중고 졸업생에게 주는 상으로, 올해 성인 수상자는 조씨가 유일하다.

22일 김영찬 성지중고 교감은 “성인 학생들 중에는 경조사가 있거나 몸이 아파 결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씨는 무엇보다도 학교가 우선이어서 선생님들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다. 조씨는 “수험생 돌보듯 챙겨주고 응원해준 아내와 아들 덕분”이라고 가족에게 공을 돌렸다.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이 유별나기는 했다. 매일같이 수업 전 칠판에 공부할 내용을 필기했다.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은 영어 문장과 해석, 수학 수업이 있는 날은 수학 문제풀이를 수업 1시간 전에 적어두는 식이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질문하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개인 교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 오사카 여행 중 한 고교에서 본 건데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하려면 예습은 필수였다. 방과 후 1시간 정도 산책을 마치면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 몰입하기 시작하면 4~5시간은 기본이었다. 언젠가 헤아려 보니 짧아져서 못 쓰게 된 몽당연필이 130개가 넘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10개가 넘는 과목의 평균 점수가 95점이 넘는다. 기술ㆍ가정을 제외하고는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목에서 A등급(90점 이상)을 받았다.

2006년 서울국제우체국에서 정년 퇴직한 조씨는 30여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공부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2013년 3월 성지중 성인반(2년제)에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터라 학력은 초등학교를 나온 게 전부였다. 그는 “업무 능력이 떨어진 적은 없었지만 전근 갈 때마다 써 내야 했던 학력 때문에 한없이 작아졌다”며 “지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게 그저 행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성지고 입학서류도 이미 접수했다. “학력이 낮은데도 공무원으로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혜택을 받았으니 사회에 보탬이 돼야죠. 직업이라기보다 순수하게 봉사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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