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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재ㆍ부품에 ‘감성’을 담자

입력
2015.0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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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는 어젯밤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연일 계속된 야근에 잠을 설칠까 걱정이었지만 새로 산 이불 덕에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진동ㆍ메모리 기능을 갖춘 복합소재로 짜인 이불은 체온유지를 도울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열팽창계수가 서로 다른 재료로 이뤄진 벽지가 알람에 맞춰 좌우로 갈라지면서 햇살과 바람이 스며든다. 어제 입은 셔츠와 양복은 이제 막 세탁소에서 찾아온 것 같다. 옷감 속에 들어간 특수 소재와 와이어가 밤새 때를 제거하고 주름을 펴놓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차 문에 흠집이 난 걸 발견했지만 자가치유 합금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회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다시 말끔해질 것이다.’

이상의 미래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첨단기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산업의 관점에서 기술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에 대한 관심이며 이를 통해 소비자 만족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기능 대부분은 이미 기술적으로 개발이 끝난 상태로 상용화 문제만 남아 있다.

이는 또한 미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스포츠카 마세라티와 음향기기 뱅앤울룹슨, 애플의 아이폰에는 남다른 게 있다.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사용자 감동과 만족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마세라티 특유의 자연흡기방식에서 빚어져 나오는 강렬하면서 중후한 울림의 사운드, 뱅앤울룹슨만의 음전달 및 촉감융합설계, 애플의 오감만족형 디자인과 감성 인터페이스가 그렇다.

요즘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낮은 가격과 높은 기능성만이 아니다. 소비의 절대 기준으로 군림해온 기술 중심의 사용가치가 퇴색하고 감정과 경험을 근간으로 하는 감성가치가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잣대로 떠올랐다. 독창적 디자인과 색다른 경험, 개개인의 성향과 기호가 중요해지면서 ‘기술 이상의 그 무엇’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기술일변도에서 기술과 감성의 융합 시대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비패턴 변화가 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먼저 기능과 가격 위주로 추진해온 그간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완제품 생산의 근간이 되는 소재ㆍ부품산업부터 감성과 경험적 만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감성 소재ㆍ부품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자산업만 해도 감성 소재ㆍ부품 시장은 2011년 1,486억 달러에서 올해 1조 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소재ㆍ부품 산업에 감성 개념이 적극 도입된 것은 1980년대 가전과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한 일본기업들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연구를 본격화하면서부터다. 승차감 향상을 위한 시트 품질 개선 등으로 시작된 감성연구는 각 분야의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가세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단순히 기술적 우위를 점하려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만족과 감동을 선사하려는 노력이 기업간 경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정부는 연구개발 역량이 미흡한 중소ㆍ중견기업의 소재ㆍ부품 감성화사업 지원을 위해 소재ㆍ부품 미래비전 2020과 제3차 소재ㆍ부품발전 기본계획에 감성 소재ㆍ부품 연구센터 구축을 포함시켜 추진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외 산학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학제간 융합연구와 개발아이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재ㆍ부품 라이브러리를 설치해 개발자들이 신소재를 경험하고 시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면 창조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소재ㆍ부품의 감성화 기술은 완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핵심요인이며,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관련분야 연구개발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권혁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부원장ㆍ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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