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로이어 베를린자유대 연구소장
"獨 17인 위원회의 생방송 토론, 시민들이 탈원전 정책 이끈 사례"
우에다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
"저유가 상황은 단기간만 지속…신재생 에너지에 계속 지원해야"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의 지방 분산과 적극적인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박 시장은 22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에너지정책 전문가인 미란다 슈로이어(52) 독일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 우에다 카즈히로(63)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시는 올해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자립 도시를 만드는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를 선언하고, 국내외 에너지 정책전문가를 초정해 다양한 포럼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와 정책 아이디어를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좌담은 이날 개최된 ‘에너지 전환 국제세미나’ 행사의 일부로 진행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하 박 시장)=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서울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하나 분량의 에너지를 감축하는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1단계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 올해 2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미란다 슈로이어 독일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이하 슈로이어 소장)= 한국도 일본처럼 강력한 원전 산업이 있고 의존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국에서 원전 반대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의 에너지 운동에 동기부여가 됐다고 본다.
우에다 카즈히로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이하 우에다 교수)=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후쿠시마로서는 커다란 재앙이지만 사고가 없었다면 에너지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고 전인 2009년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국민의 50%이상이 원전 확대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약 10% 정도만이 원전에 찬성한다. 엄청난 변화다.
박 시장= 최근 국제유가가 2013년도 대비 50% 이상이 하락했다고 한다. 저유가 상황이 지속 될 경우 시민들에게 친환경 정책을 장려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신재생 에너지 전환에 어떤 영향이 있나.
우에다 교수= 국제 에너지 시장은 매우 복잡하다. 저유가 상황은 단기간만 지속될 것이라 본다. 장기적으로 탄소세 등을 도입하고 화석에너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의 대안뿐 아니라 여러 경제ㆍ사회적 혜택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과 별개로 안정적인 지원을 계속 해야 한다. 점점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ㆍ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와 화석연료의 발전단가가 동일해지는 균형점)에 다가가고 있다.
박 시장= 에너지 가격은 중앙 정부가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시민의 참여를 독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아파트에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미니태양광’을 보급하는 등 최대한 많은 시민이 에너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슈로이어 소장= 베를린의 경우 모든 정당과 학자 20여명이 함께 에너지 전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에너지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방법을 고민 중이다. 베를린시 주변 지역과 연계해 각 가구와 작은 기업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수처리 시설이나 쓰레기 소각처리시설의 열도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우에다 교수= 현재 각국의 당면 과제는 에너지 정책의 분산이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경우 각 도시마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다르다. 쉽지는 않겠지만 중앙 정부 차원이 아닌 지자체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만들고 지원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 시장=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이 정책이 현실이 되려면 좋은 거버넌스와 시민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슈로이어 소장= 독일의 경우 시와 에너지 기업, 대학, 병원이 에너지 절감에 대한 협력을 맺었다. 시와 에너지 감소 변화 목표치를 세우고 절감된 전기료나 난방비만큼 시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각 대학에서는 매학기 11~13세 학생 4,000명을 초청해 기후와 에너지에 대해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박 시장= 우리도 몇몇 대학과 에너지 감축을 목표로 협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정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 몇 퍼센트를 정하고 협약을 체결하고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우에다 교수= 시와 시민이 에너지 절감과 관련해 협력하는 데 있어서 실용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절약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되는 시스템을 시민들의 일상뿐 아니라 병원, 투자기간 등 민간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에너지 절약이 결국 도시의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 시장=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10시간의 토론 생방송까지 진행한 독일의 ‘17인 위원회’의 활동이 인상적이다.
슈로이어 소장= 후쿠시마 사고 이후 메르켈 총리가 원전 페기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설치한 ‘17인 위원회’의 경우는 에너지를 윤리적 측면에서 다룬 세계 최초 사례다. 에너지가 환경과 인권,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계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검토했다. 이견이 많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이 가장 적은 것은 재생에너지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재생에너지 위주 에너지 정책을 이끌어냈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다수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에다 교수=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하고 투명하게 소통할 수 있는 거버넌스는 새로운 에너지를 도입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정책의 결과는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규제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적 방식을 도입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방안인지 고민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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