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꿈 속 신선에게 금척 받은 곳
2월 중순 통제 풀려 산꾼들 두근두근
생태보전ㆍ급경사 구간 안전 이유로
입장객은 선착순 하루 100명 제한
홍삼스파 등 입소문 年100만명 찾아
인근 산에 천문대ㆍ양서류박물관…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 추진
참 기괴하게 생겼다. 전북 진안군의 마이산(686m) 이야기다.
암수로 나뉜 봉우리는 땅에서 솟았다기보다 누군가 하늘에서 큼직한 바위 덩어리를 꽂아 놓은 듯하다. 산자락에는 언제 누가 세웠는지조차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돌탑들이 서있고, 한겨울 산 골짜기에 물을 떠놓으면 고드름이 거꾸로 치솟는다. 이런 신비함 때문에 마이산은 오래 전부터 영산(靈山)으로 여겨져 왔다.
매년 10월이면 진안군민들이 모여 기가 가득한 마이산 밑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군수가 직접 제사를 총괄하는, 군 전체 차원으로 이뤄지는 공식 산신제가 열리는 산이다. 진안을 대표하는 마이산이 이젠 진안의 발전과 미래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산은 1979년 도립공원 반열에 오르고, 2003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2호로 지정되는 등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근래 들어 새 길이 뚫리고 주변에 즐길 거리들이 많이 생기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교통오지였던 진안에 2007년 12월 익산~장수구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진안IC가 생겼고, 지역의 대표 특산물인 홍삼을 테마로 만든 홍삼스파와 호텔이 마이산 북부주차장 입구에 문을 열면서 입소문이 번졌다. 게다가 10년간 통제한 마이산 정상이 지난해 10월 개방돼 전국의 산꾼들을 설레게 했다.
이젠 마이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 2011년 발간된 세계적인 여행안내서인 프랑스의 ‘미슐랭 그린가이드’는 마이산에 별 3개 만점을 부여하며 한국 최고 여행명소로 꼽았다. 일년에 관광객 100만명 이상이 모여들자 마이산 관리사무소에는 관광해설사 5명이 상주해 인터넷 예약을 통해 안내하고, 외국인을 위해 영어ㆍ중국어ㆍ일어 통역사도 5명 근무한다.
동봉(숫마이봉ㆍ680m)과 서봉(암마이봉ㆍ686m)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명칭은 사계절 모두 다르다. 봄에는 쌍돛대 같다 해서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린다.
특이한 형태만큼 숱한 전설도 많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7월 전북 남원 운봉의 황산전투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장군이 되어 귀경길에 오른 이성계는 마이산 아래 은수사에 머물며 건국을 염원하는 백일기도를 올렸는데 꿈에 신선에게 금척(金尺)를 받던 곳과 마이산이 똑같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초에는 신선이 내려준 금자(金)를 묶은(束) 모양이란 뜻으로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렸다. 마이산은 태조의 아들 태종이 지은 것으로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유래하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태종이 일부러 격을 낮춰 바꾼 것이라 전해진다.
마이산의 또 다른 걸작은 탑사의 돌탑이다. 자연이 조각한 신비의 극치가 마이산이라면 사람이 만든 신비의 절정은 자연석을 쌓아 만든 석탑이다. 당초 120여기가 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현재는 80여기만 남아있다. 손끝만 대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지만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영험한 마이산의 정상은 오랫동안 통제돼 왔다. 암마이봉이 2004년 자연생태복원을 위해 휴식년제에 들어갔었고, 더 가파른 숫마이봉은 암벽등반도 하지 못하도록 입산이 금지돼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천황문~암마이봉 정상 600m구간이 10년 만에 개방된 것이다. 생태보전과 깎아지른 구간에 인파가 몰릴 경우 위험하기 때문에 입장객은 하루에 100명으로 제한했다. 오전 10시에 50명, 오후 2시에 50명이 선착순으로 입장 가능하다. 전화나 인터넷 예약은 받지 않으며 천황문 암마이봉 입구에 줄을 서야 한다. 다만 동절기에는 미끄러워 2월 중순까지 잠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 본 마이산은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거대한 절벽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위압적이다. 자세히 보면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섞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역암 덩어리다. 움푹 파인 곳이 많아 달의 표면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특이하다. 암석이 풍화작용을 받아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타포니(Taffoni)라고 한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편이다. 이 역암 덩어리는 땅속에 잠긴 부분까지 합하면 1,50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마이산 역암층은 대체로 1억년에서 9,000만년 전에 퇴적돼 고화된 암석으로 추정된다. 그 뒤 지각 운동에 의해 솟아 올라 현재와 같이 지표면에 노출됐다.
숫마이봉이 남성의 성기를 닮아서인지 과거에는 숫마이봉이 보이는 마을에는 모두 가림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집에서 숫마이봉이 바로 보이면 여자가 바람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요즘엔 다른 산에 올라 마이산을 만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마이산은 보는 거리와 각도의 방향에 따라 모양과 이미지가 다르다. 진안군은 여기에 이야기를 입혀 머물다 가는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 핵심은 부귀산(806m)이다. 마이산의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최고의 전망대다. 이곳은 특히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동틀 무렵 안개를 뚫고 솟은 마이산의 몽환적인 자태를 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도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이곳을 선정했고 촬영포인트에 전망대도 만들었다.
진안군은 부귀산에 천문대와 양서류박물관, 포토존을 설치해 볼거리를 만들고 모노레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주변 내동산, 운장산, 천반산, 구봉산, 성수산에도 포토존을 만들어 사방팔방에서 마이산을 조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체류형 관광지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뿐만 아니라 마이산 중심으로 종합관광벨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부권 관광단지에 주차장, 미로공원, 산약초타운, 사양제 생태공원 등을 마무리 한 뒤 2단계로 2020년까지 남부권에 대한 관광자원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항로 진안군수는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지리산과 전남 구례 화엄사, 부산 자갈치 시장, 서울 인사동 등이 별 2개를 받는데 그친 반면 마이산이 별 3개로 만점을 받은 것은 그 만큼 가치가 높다는 것”이라며 “부귀산 등에 올라 마이산 운해의 장관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산지훼손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모노레일 등 관광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안=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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