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밥 먹자.” 길을 가다 우연히 아는 동생을 만나서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내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계속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꽤 오래전에 ‘언제 한번’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대화를 맺기 위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언제 한번’이라는 말은 지금을 기약(期約) 없는 미래로 미루는 비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화의 마지막에 으레 하곤 하는 “언제 한번 보자”나 “언제 한번 차 마시죠”, “언제 한번 제대로 놀아야지?”와 같은 말들이 공수표처럼 느껴졌다. 다분히 의례적인 인사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돌이켜보니 ‘언제 한번’이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지 않을 것을 잘 알 때만 그 말을 썼던 것도 같다. 나만의 사전을 만들자고 마음먹은 뒤 ‘언제 한번’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 적도 있었다.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또 해버린 것이다. 결코 오지 않을 어떤 순간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순간이 찾아올까 봐, 아니 앞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언제 한번이 마침내 기약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언제 한번’을 ‘내일 몇 시’로 만들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한 말 한 마디가 비로소 몸을 갖게 되는 순간, 관계 또한 생기를 얻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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