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개발원 조사 보고서...대학생 10명 중 4명 "수업 불만족"
채용·대학평가 기준 연구에 쏠려...교수들 업적 쌓기에 내몰린 탓
서울의 한 사립대 4학년 A(25)씨는 지난해 전공수업인 ‘중국 역사’ 시간에 채팅을 하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했다. 몇 년째 반복되는 강의 내용이 식상했고, 시험도 매년 똑같아 ‘족보(기출문제)’만 공부해도 좋은 성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커리큘럼이 4~5년 전 것이라 설마 했는데 실제 수업 내용도 그대로여서 실망이 컸다”며 “비싼 등록금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수도권 B대학의 C교수는 “교수 평가가 연구 업적이나 정부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업을 따 오느냐에 달려 있어 학생들을 더 잘 가르쳐야 하는 건 알지만 연구 실적과 정부의 사업 공모 보고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임용된 젊은 교수일수록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라 종신 고용을 위해 연구실적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부실한 수업으로 우리나라 대학생 10명 중 6명만 대학 강의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은 교수와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정부의 대학 평가가 교수들의 연구 성과와 취업률에 맞춰져 대학이 학생을 잘 가르치는 데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21일 한국교육개발원의 ‘4년제 대학의 교수ㆍ학습 역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ㆍ교양 수업 만족도는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국 62개 대학 4만2,0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공 수업의 ‘전반적인 수업 만족도’에서 ‘만족한다’ 고 응답한 비율은 64.3%였다. 이 비율은 2011년 83%에서 2012년 70.6%, 2013년 75.2%로 꾸준히 하락했다. 교양수업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도 2011년 78.8%에서 2014년 54.5%로 폭락했다.
대학 강의로 전공 관련 지식과 능력이 ‘향상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 62.5%에서 지난해 66%로 소폭 상승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향상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 39.3%에서 지난해 37.5%로 오히려 줄었다.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ㆍ분석적 사고’ 가 향상됐다고 응답한 비율도 매년 조사 때마다 40% 수준에 그쳤다.
교육부는 그 동안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BK21 플러스사업(예산 2,973억원), 산학협력선도대학(LINC)사업(2,388억원),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2,696억원)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육의 질은 향상되지 않은 셈이다.
연구 책임자인 유현숙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대학 역량 강화 사업이나 경쟁력 평가가 교수들의 연구 성과나 취업률 등 양적인 것에 쏠려 있어 대학들이 교수의 학습 능력과 학생의 학습 성과 향상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수들과 학생간의 교류도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에 대해 교수와 의논하느냐’는 질문에 ‘거의 안함’(38.7%), ‘가끔’(41%)이라고 답해 78.7%가 교수와의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전반적인 수업 태도도 나빠져 학생들의 지각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결과 2011년 1.77점(4점 만점)에서 지난해 3.02점으로 늘었다. 1주에 5회 이상 지각한다는 의미다. 수업시간에 결석하는 학생들의 평균값도 2011년 1.68점에서 2014년 2.9점으로 증가해 학생당 한 학기 5회 이상 결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수업시간에 문자나 채팅을 하는 행위도 2011년 1.79점에서 2014년 1.86점으로 늘었다. A씨는 “수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수록 수업 태도도 불량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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