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태어나 자란 중국인 3세… 웅장한 필력·장대한 역사 지식 펼쳐
중국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과 평론 등으로 유명한 작가 진순신(陳舜臣ㆍ사진)이 2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1924년 일본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중국인이다. 조상은 원래 중국 푸젠성(福建省) 출신이지만, 할아버지가 대만에서 고베로 이사, 무역상을 했다.
고인은 1941년 오사카 외국어학교(현재 오사카대 외국어학부)에서 인도어와 페르시아어를 전공했다. 학창 시절 료마가 간다 등 다양한 역사소설을 쓴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와 친분을 맺었다. 이 학교 조교로 재직 중이던 고인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배하면서 국적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고, 연구자로서의 길이 막히자 소설가로 전향했다.
고인은 61년 시든 풀뿌리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초기에 추리소설로 입지를 다진 고인은 67년 원고지 3,000매 분량의 장편소설 아편전쟁 집필을 계기로 역사ㆍ사회적 관점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웅장한 필력과 풍부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십팔사략 태평천국 칭기스칸 일족 비본 삼국지 중국역사단편집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 ‘중국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69년에는 청옥사자향로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생생한 인물 묘사가 압권인 실록아편전쟁을 비롯, 돈황의 여행 다도 순례 제갈량 등을 발표해 통사, 소설, 기행, 전기, 수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역사와 인간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통사 중국 역사와 역사소설 태평 천국 등은 다민족과 문화가 뒤섞인 장대한 세계를 그려냈다.
고인은 일본에서 자란 중국인이라는 특징을 활용, 중일 양국의 상호 이해를 위한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미술ㆍ도예 감정가로도 남다른 심미안을 가졌다. 1990년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중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대만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다. 아사히상(92년), 일본예술원상(94년), 이노우에 야스시문화상(95년) 등을 수상했고 나오키상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인자하고 친근감 있는 어른다운 면모로 존경 받은 그는 간사이 지방 문화인의 대가로 풍부한 인맥을 쌓았다. 공연과 좌담에서도 큰 활약을 펼쳤다.
고인은 94년 뇌출혈로 쓰러져 5개월간 입원했고, 퇴원 4일 후에 한신 대지진을 경험하면서 대작 칭기스칸 일족을 완성시켰다. 2008년 두번째 뇌출혈을 겪은 뒤 재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 5월 고인의 작품과 자료를 모은 ‘진순신 아시아문예관’이 고베시에 문을 열었다.
고인의 저술 활동은 후배 문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숱한 소설가가 그의 뒤를 따랐다. 이들을 칭하는 ‘진순신 산맥’이라는 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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