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 국정연설에서 남은 임기 2년간 ‘경제 회복’이라는 치적관리와 정권 재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제유가 하락, 일자리 창출 등 호전된 경제사정을 바탕으로 민주당 지지기반인 중산ㆍ서민층을 끌어 안는 정책을 내세워 공화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신년연설, 좋은 재료ㆍ잘 짜인 각본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는 백악관 참모들은 이날 국정연설의 초점을 ‘살아난 미국 경제ㆍ중산층 살리기’에 맞췄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경제지표를 소개하며 그가 재임한 지난 6년간 미국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역설했다. 또 셰일원유 혁명으로 국제유가가 급속히 떨어지면서 미국인이 체감하는 소비여력이 크게 개선된 것도 부각시켰다.
오바바 대통령은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미국 경제를 회복시킨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한 뒤, 경제 회복의 과실을 중산ㆍ서민층에게 돌려주자는 명분으로 공화당을 압박했다. 그는 “몇몇 소수에게만 특별히 좋은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의 소득과 기회를 확대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이냐”라고 물은 뒤, “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다”라고 강조했다.
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언, 이란과의 핵 협상,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 등도 외교분야 치적임을 역설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윌리암 갤스톤 선임연구원은 “최근 지지율 상승이 보여주듯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를 내세운 건 적절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곳곳에서 미국의 단합을 강조했지만, 이날 연설은 명백하게 민주당을 위한 당파적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도 ‘경제회복ㆍ중산층 살리기’라는 재료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미국인들에게 적극 홍보했다. 이날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 신년연설 역사상 최초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인터넷에 전문 공개했다. 또 백악관 홈페이지는 중계방송을 내보내며, 각 장면마다 연설 내용을 뒷받침하는 수치가 포함된 도표나 사진을 함께 내보냈다. 백악관이 제시한 국제비교 자료에는 여성근로자 유급출산 휴가와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 창출에서 한국 사례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고민 속에 반발하는 공화당
오바마 대통령의 중산층 살리기 구상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자유경쟁’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은 태생적으로 증세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연설 내내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포퓰리즘’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공화당도 반대만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형국이다. 자칫 ‘반서민 정당’, ‘부자 정당’으로 낙인 찍히면서 내년 대선에서 백악관 탈환이 물거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선 치적 관리와 대선 승리를 위한 그야말로 ‘절묘한’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대다수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증세 구상이 2016년 대선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의 대응은 오바마 제안을 정면 부정하는 대신,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갤스톤 연구위원은 “신년 연설에서 ▦사회보장 예산 개혁 방안 ▦재정적자 감축방안 ▦국방력 강화 방안이 빠진 것을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현 상황에서는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정부 기능을 개혁하고, 분배보다는 경제성장에 치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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