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 속 처박아 둔 혼수 그릇 색다른 분위기 연출에 제격
세상의 모든 인간은 찬장 앞에서 눈을 빛내는 인간과 빛내지 않는 인간으로 나뉜다. 눈을 빛내는 인간은 그 이유에 따라 또 다시 분류된다. 이제 막 살림에 입문한 새댁들은 혼수로 야심 차게 사들인 그릇 세트의 조화로움에 흐뭇해 할 것이고, 살림에 도가 튼 주부들은 모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다채로운 기능의 식기들을 보며 미소 지을 것이다. 그러나 살림의 ‘살’자도 모르는 이에게도 찬장은 묘한 설렘을 안겨준다. 그것은 그릇의 조형미가 주는 미적 쾌감일 수도, 식기가 되살린 즐거운 미식의 추억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꽉 들어찬 사물이 주는 뿌듯한 안정감일 수도 있겠다.
잡지 에디터 장민씨와 도예가 주윤경씨가 함께 쓴 ‘남의 집 찬장 구경’은 찬장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삶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다. “남의 집 찬장 구경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고 외치는 이들이 그릇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열 명의 찬장을 공개했다. 전업주부, 영화 미술감독, 공간 데코레이터, 도예가, 카페 주인, 작가, 사진가, 요리사의 찬장에는 주인의 은밀한 취향과 다년 간의 수집 경험을 통한 그릇 고르기 요령, 쉽고 아름다운 상차림 비법이 빼곡히 수납돼 있다. 그릇에 대한 애정은 넘치지만 찬장 관리에 서투른 이들을 위해 몇몇 노하우를 발췌했다. 예쁜 그릇을 위해서라면 천리길도 마다지 않는 이들이 들려주는 ‘찬장 속에 처박아둔 그릇 활용법’.
▦ ‘통일은 대박’. 색 혹은 질감을 통일하라
패션이든 인테리어든 일단 기본은 통일이다. 비슷한 색, 비슷한 질감, 비슷한 크기에서 인간이 느끼는 안정감은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찬장의 모든 식기를 한 곳에서 일시에 구매하지 않는 한 그릇들을 전부 통일시키는 어려운 일. 통일이 어렵다면 차선으로 ‘통일감’을 살리면 된다. 색감, 질감, 재질 중 하나만 맞춰도 쉽게 통일감을 낼 수 있다. 색이 달라도 같은 사기 그릇이라면 안정감을 준다. 플라스틱 접시와 스테인리스 수저라도 색이 비슷하면 조화롭게 느껴진다. 이리저리 맞춰 봐도 도저히 통일이 안 된다면 식탁보나 소품 등 식기 외 물건들의 톤을 맞추는 것도 효과적이다. 누런 마 소재의 식탁보 위에 원목 수저를 놓는다면 다른 식기들의 불협화음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색깔이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릇 선택에서 유독 무채색을 고집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음식과의 조화 때문이다. 예쁜 풍경화가 그려진 컵이나 알록달록한 접시처럼 그 자체로 미학적 완성도를 가진 식기들은 음식을 올려 놓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퇴색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색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시원함, 따뜻함, 설렘, 안락함 등 다양한 분위기를 손쉽게 연출할 수 있다. 푸른색과 흰색 그릇은 더운 여름에 청량감을 준다. 두 가지 색을 조합해서 내놓으면 금상첨화. 지루하지 않고 시원한 효과가 배가된다. 하얀 바리에 푸른 접시, 여기에 깨끗한 유리컵을 놓으면 여름 상차림이 완성된다. 크리스마스처럼 한껏 들뜬 분위기가 필요한 날, 빨간색 식기는 단 한 벌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자 빨간색으로 도배하면 효과가 떨어지니 테이블보나 컵, 주전자, 포크 등 한두 개 정도에만 포인트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빨간색 식기를 놓았다면 식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초록색이 있어야 한다. 채도가 낮은 식기는 안정감을 주는 데 제격이다. 베이지색, 미색, 연한 회색 식기로 꾸민 식탁은 통통 튀는 발랄함이나 왕성한 식욕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연스럽고 건강한 느낌을 준다.
▦빈티지 그릇의 무궁무진한 변신
빈티지 그릇의 정의는 다소 모호하다. 패션의 경우 빈티지는 최소 20년 전 생산된 옷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패션계 종사자들의 이야기고, 일반적으로는 ‘너무 예스러워 요즘엔 도저히 못 입을 옷’을 일컫는다. 빈티지 그릇도 패션의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거실 한 켠 거대한 장식장 안에 차곡차곡 수납돼 있던 본차이나 그릇, 모던함과는 거리가 먼 알록달록한 꽃무늬 찻잔이나 접시를 흔히 빈티지라고 부른다.
빈티지 그릇의 가장 쉬운 활용법은 단순한 식기들 가운데 포인트로 삼는 것이다. 평소엔 화투처럼 신산스럽게 보이던 빨간 꽃무늬 찻잔도 민자 식기들 사이에 놓으면 점잖은 신사들 가운데 앳된 소녀처럼 생기발랄해 보이기도 한다. 일부러 충돌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파란 격자 무늬 접시와 꽃으로 도배된 찻잔, 노란 땡땡이가 빈틈없이 그려진 주발로 식탁을 꽉 채우면 의외로 ‘과잉’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때도 무늬 없는 식탁보를 택하는 절제의 미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조합, 흑과 백
흑백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이다. 이는 찬장과 옷장, 그리고 거리를 달리는 차들의 색깔만 봐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상당한 심미안을 필요로 하는 유채색들의 조합과 달리 흑과 백의 조화는 손쉽게 모던하고 안정감 있는 식탁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형태나 질감에서 약간의 ‘무질서’를 허용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질서정연한 흑백 그릇들 가운데 놓인 비정형의 대접은 어떤 강렬한 색깔로도 연출할 수 없는 인상적인 느낌을 풍긴다. 매끈한 소재와 꺼끌꺼끌한 소재를 조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표면에 참외 무늬나 연꽃 무늬 등을 새긴 백자는 유약의 농담이나 조명의 밝기에 따라 표면의 패턴이 바뀌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투명한 유리나 자연적인 분위기의 목기,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리스도 부분적으로 활용한다면 흑백 상차림의 좋은 포인트가 된다.
▦그 밖의 조언들
- 눈에 보이는 곳에 두라 : 비싸고 좋은 그릇이라고 찬장 속에 고이 놓아 모셔뒀다가는 이사할 때나 한 번씩 조우하는 서먹한 관계가 되고 만다. 선반이나 창턱에 그릇을 놓아두면 그 자체로 인테리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아이 교육에 활용하라 : 아이들에게 그릇은 어쩌면 장난감보다 더 자주 대면하는 물건이다. 이왕이면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모양이 독특해 이야깃거리를 자아내는 식기를 구매하라. 그릇을 매개로 부모와 아이의 소통이 더 깊어질 수 있다.
- 소반을 자주 꺼내라 : 그릇을 감각적으로 조합하는 게 어렵다면 무대를 줄여버리는 것도 좋다. 혼자나 두 사람이 식사할 때는 아담한 소반을 꺼내라. 흰색 공기와 회색 탕기만으로도 예쁜 상차림을 완성할 수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