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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뱃사공아~ 홀연히 떨치고 가자꾸나

입력
2015.01.2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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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가는 느낌으로 오세요”

관광해설사 권인숙씨의 한마디에 정선의 지형적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31번, 42번 국도로 가면 평창강과 동강을 만나고, 진부IC에서는 오대천을 따라 내려간다.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38번 국도로 영월을 거쳐가면 동강과 지장천 어천 조양강을 차례로 거친다. 동해 방면에서는 골지천, 강릉 방향에서는 송천을 따라 내려오면 정선 땅이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지만 도로와 철길은 수시로 물길을 넘나들며 정선 땅에 닿아 있다. ‘아리아리 정선 아리랑’은 높고 낮은 산자락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물길을 닮아 있다.

최초로 지역 이름 딴 ‘정선 아리랑 A트레인’

22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정선아리랑 A트레인'이 민둥산역에서 정선역으로 달리고 있다. 이 관광열차는 화·수요일을 제외하고 주 5회 청량리~아우라지역 구간을 운행한다(정선 오일장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운행). 아리랑을 형상화한 외관의 곡선은 여러 물길이 교차하는 정선의 지형을 닮았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22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정선아리랑 A트레인'이 민둥산역에서 정선역으로 달리고 있다. 이 관광열차는 화·수요일을 제외하고 주 5회 청량리~아우라지역 구간을 운행한다(정선 오일장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운행). 아리랑을 형상화한 외관의 곡선은 여러 물길이 교차하는 정선의 지형을 닮았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제천역과 정선 아우라지역을 오가던 꼬마열차 대신 오늘(22일)부터‘정선아리랑 A트레인’이 새롭게 운행을 시작했다. 화·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10분 청량리역을 출발해 원주-제천-영월-민둥산-별어곡-선평-정선역을 거쳐 오후 12시40분에 아우라지역에 도착한다. 정선 5일장이 서는 날(끝자리 2·7일)이면 요일에 상관없이 운행한다. 승용차로 정선을 찾는 관광객도 아우라지역에서 민둥산역까지 따로 한 차례 왕복하는 아리랑 열차를 타 볼 수 있다.

코레일에서 운행하는 5개의 관광열차 노선에 지역 이름을 붙인 건 정선이 처음이다. “하루 200명 정도 이용할 수 있는 관광열차가 당장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정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물결모양 곡선의 차량 외관 디자인 비용을 댄 정선군 관계자의 기대다. ‘정선아리랑 A트레인’과 연계한 정선지역 주요 관광지를 미리 둘러 보았다.

우람하고 기세 등등한 진짜 한반도 지형

표고 325m를 시속 70km 속도로 내려가는 병방산 짚와이어. 웅장한 한반도 지형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아찔하다.
표고 325m를 시속 70km 속도로 내려가는 병방산 짚와이어. 웅장한 한반도 지형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아찔하다.

정선 읍내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 병방산(해발 861m)이다. 이곳 주민들은 뱅뱅산이라고 부른다. 산 너머 귤암리 사람들이 정선장을 오갈 때마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한 산길을 실타래처럼 뱅뱅 돌아서 오르내렸다는 데서 부른 이름이다. 평창으로 가는 42번 국도는 동강 물길 따라 휘어지는데, 산 중턱으로 길이 새로 생겼다. 한반도 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까지 연결된 길이다.

전국에 ‘한반도 지형’이라고 홍보하는 곳이 많은데 영월의 선암마을은 지명을 ‘한반도면’으로 바꿀 정도로 적극적이다. 닮은 정도만으로 보자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영월 쪽이 안정감 있고 평화로운 느낌이라면 정선의 한반도 지형은 우람하고 기세 등등하다. 해발 600m 높이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전망대 아래는 300m 낭떠러지다. 수직에 가깝게 내려다보는 한반도 지형은 아찔하면서도 웅장하다. 동강의 물길 따라 이어진 우람한 산세도 아스라한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한반도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규모도 선암마을에 비하면 2배 이상이다.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가다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보는 모습도 괜찮다. 바로 옆에 설치한 짚와이어(Zip-Wire)는 새로운 즐길 거리다. 325m 표고를 시속 70km 속도로 광하리 생태체험학습장까지 1.1km를 활강한다. 쌔~앵, 쇳소리에 바람소리까지 가세해 아찔함이 배가된다. 마치 한반도 어느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포함해 40,000원이다. 좀 비싼 느낌이지만 짜릿한 공포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폐광과 석회동굴을 연결한 테마공원 화암동굴

폐금광을 활용한 화암동굴의 계단이 지하궁전을 연상케한다.
폐금광을 활용한 화암동굴의 계단이 지하궁전을 연상케한다.

정선 읍내에서 동쪽으로 약 18km 떨어진 화암동굴은 국내 유일의 테마 공원 동굴이다.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과 채굴 도중 발견한 석회동굴을 연결해 5개 주제의 전시시설로 꾸몄다.

주차장에서 동굴입구까지는 90명을 태울 수 있는 3량의 모노레일 차량이 운행한다. 운행시간은 6분, 어른기준 3,000원이다. 걷는 길도 잘 닦여 있다. 약 700m 산책로는 조금 가파르지만 힘들지 않다. 동굴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친절하게도 화장실 안내판이다. “마지막 화장실, 앞으로 1803m(1시간 30분 소요) 구간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반드시 용변을 보신 후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웃어 넘길 게 아니다. 일단 동굴에 입장하면 되돌아 나올 수 없다. 출구인 주차장까지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주의 표지판, “200m(365 계단)나 되는 급경사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보행이 불편하신 분들은 위험하오니 입장하지 마십시오”

시작은 순조롭다. 소형 승용차 한 대는 너끈히 통과할 만큼 폭이 넓고 웬만한 인도보다 보도블록이 잘 깔려 있다. 본격적으로 갱도 속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길 양편으로 채굴작업과 선로작업 등 금광 개발 당시의 실물크기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한 광부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있다. 누구나 관심을 갖는 실제 금맥도 볼 수 있다. 확대경을 설치해 희미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금가루가 보인다. 금이 가장 많이 난‘노다지 궁전’이라 이름 붙인 계단은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다. 철제계단을 비추는 조명이 거대한 지하궁전을 연상케 한다. 계단의 끝부분은 금광석을 채취해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전 과정을 도깨비들이 전해주는 동화의 나라로 꾸몄다. 다음 코스는 금의 종류와 역사 등 ‘금에 대한 모든 것’을 전시했다. 단단한 안전장치 안에 실제 금궤도 있다. 3D 영상이 만들어내는 황금 기둥까지 보고 나면,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하는 욕심마저 생긴다.

테마 동굴의 마지막은 석회암 동굴이다. 다른 4개의 테마와 달리 조명과 이동 통로를 빼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규모는 작지만 종유석과 석순 등 석회암 동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숲과 계곡 정겨운 마을 풍경 따라가는 정선 레일바이크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폐선 구간을 이용하는 정선 레일바이크.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폐선 구간을 이용하는 정선 레일바이크.

정선레일바이크는 정선선 열차 종착지였던 여량면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약 7.2km 폐선로를 이용한 놀이 기구다. 길이도 그렇지만 숲과 계곡, 터널과 마을을 두루 지나고 있어 풍광만으로 치면 전국의 수많은 레일바이크 중에서도 최고의 코스로 꼽힌다.

암수 여치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모양을 한 여치 카페가 있는 구절리역에서 2인승 혹은 4인승 레일바이크를 탄다. 시작부터 조금씩 내리막 길이어서 부담이 없다.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낙엽송 숲길이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송천을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달린다. 종착지를 약 1.5km 앞둔 유천1리에는 지친 다리를 쉴 겸 선로 옆으로 휴게소도 마련돼 있다. 아우라지 역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터널이 가장 난코스다. 다리가 조금씩 뻐근해지고 속도가 떨어질 때쯤이면 터널 안에서 정선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아리랑 가락처럼 천천히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바로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목재를 한양의 마포나루까지 실어내던 출발지다. 속이 단단하고 붉은 이곳 소나무는 특히 인기가 많아 뗏목을 타던 사공들이 돈 꽤나 만졌단다. ‘떼돈’의 유래라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여량(餘糧)이라는 지명도 인구에 비해 곡식이 남을 정도로 넉넉한 곳이라는 뜻이다. 실제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들이 제법 넓다. 아우라지 주변 산들도 지역 주민들은 쥐떼로부터 곡식을 지키라는 뜻으로 고양산으로 부른다. 아우라지 양편으로는 남녀 한 쌍의 동상이 서로 애잔하게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나룻배는 있어도 사공은 없고, 2개의 철제 교량이 섶 다리를 대신해 옛 멋이 많이 사라진 게 다소 아쉽다.

아우라지역에선 천연기념물 어름치 한 쌍이 붙어 있는 모양의 어름치 카페가 여행객을 반긴다. 쉬엄쉬엄 약 50분 걸린다. 요금은 대당으로 받는다. 2인승은 25,000원, 4인승은 35,000원이다. 동절기(2월말까지)는 하루 4회 운행하는데 인기가 많아 예약이 필수다.

돌 이야기에 풀어낸 옥산장 아리랑

옥산장 여주인 전옥매 부부가 정선아리랑을 불러주고 있다.
옥산장 여주인 전옥매 부부가 정선아리랑을 불러주고 있다.

정선 안내 책자에는 “조선 개국초기 고려왕조를 섬기던 선비들이 정선 지방에 숨어 지내면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시로 표현한 것을 구전 토착 민요에 후렴을 달아 부른 것”이라고 정선아리랑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산간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감정과 애환을 보태 기록으로 남은 가사만 5,500수에 이르고 비공식적으로는 7,000수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정선아리랑은 현재진행형 민요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올동박은 낙엽이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노랫말은 많은 부분 남녀의 애잔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아우라지’부터 그렇다. 평창 발왕산에서 내려오는 송천과 태백 검룡소에서 출발한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물소리가 요란한 송천은 양수요, 얌전하게 흐르는 골지천은 음수란다.

여량면의 옥산장 여관 주인장 전옥매(80) 여사가 들려주는 정선아리랑은 더욱 노골적이다. 꼬마신랑을 모시고(?) 살아가는 민며느리의 넋두리를 표현한 가사는 애잔하면서도 해학이 넘치지만, 24금보다 더 순도 높은 ‘19금’이어서 차마 옮기지 못할 정도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이후 유명해진 그의 삶 자체가 정선아리랑이다.

효부상을 2번이나 받았을 정도니 그 속은 또 어떠했을까? 그 설움과 한이 ‘돌 이야기’가 되어 옥산장 여관 집 한 칸에 가득 쌓여 있다. 30여 년 전 답답한 가슴을 풀려고 아우라지 강가에 나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돌 하나가 시작이었다. 처음엔 1~10까지 숫자만 모아보자 했던 것이 유명인의 얼굴 모양까지 모이고, 예수님 부처님 마리아 상까지 강가에 나설 때마다 돌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은 것이 지금은 12지지(地支) 열두 동물 그림이 새겨진 돌을 4쌍이나 모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지만, 전 여사의 해설을 듣고 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열두 동물 암컷과 수컷이 모이면 어김없이 새끼 돌까지 나타나 가족을 이뤘다. 암수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잉태하고, 또 늙어 병들어 가는 과정까지 돌에 새겨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전 여사의 ‘돌 이야기’는 곧 정선아리랑이 된다.

30년이나 된 오래된 여관이지만 내부는 정갈하다. 함께 운영하는 식당은 곤드레밥 정식이기본이지만, 단체손님이 주문하면 황기백숙이 추가된 코스요리를 내놓는다. 여기에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구성진 정선아리랑 가락을 즉석에서 뽑아 얹는다. 힘을 주지 않고도 아우라지 강물처럼 때로는 애잔하고 때로는 명랑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성과 친절이 장사의 기본임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왁자지껄한 새봄 기다리는 정선5일장.

정선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격자 모양의 골목골목은 모두 지붕을 얹었다. 황기 더덕 곤드레 등 산나물과 약초상을 비롯해, 곤드레밥 콧등치기 감자송편 등 토속음식점이 빼곡하다. 겨울철엔 수수쌀, 옥수수쌀 등 지역에서 나는 잡곡도 인기다. 여느 5일장에 비하면 평일에도 붐비는 편이지만, 왁자지껄한 시골장의 풍경에는 못 미친다. 정선 5일장의 꽃, 지역 주민들의 노점은 날이 좀더 풀려야 볼 수 있다.

“개구리란 놈이 뛰는 것은 멀리 가자는 것이요, 이네 몸이 웃는 것은 정들자는 뜻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관광해설사의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정선역에서 청량리로 돌아오는 아리랑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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