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전직 대통령 휘호 선호도는 박정희,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 순으로 높다.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2005년부터 10년간 거래가 많았던 전직 대통령 휘호 낙찰총액을 박정희 10억 9200만 원, 이승만 5억 6100만 원, 김대중 3억 2300만 원 순으로 집계했다. 역대 최고가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인용(智仁勇)’으로 2006년 경매에서 1억 5500만원에 낙찰됐다.
이 밖에 낙찰 총액이 3200만원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 휘호들이 눈길을 끈다. 경매업계 관계자는 '일반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희귀 작품을 소장하려는 추종자들 덕분에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이 쓴 휘호 ‘고진감래(苦盡甘來)’(1975)는 2013년 경매에서 1100만 원에 낙찰됐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신문 방송이나 인터넷, SNS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언론 기사나 관보를 통한 간접적인 알림 수준인데다 그마저 입에서 입을 거치다 보면 본래의 뜻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붓을 휘둘러 쓰는 글씨, ‘휘호’는 대통령의 국정 의지와 방향을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휘호는 국민을 가르치는 교훈내지는 구호 같았고, 소통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선언에 가까웠다.
정부 시책에 토 다는 일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대통령의 휘호는 여기저기 넘쳐났다. 근검 절약을 독려하는 신년 휘호는 물론이고 정부기관이나 학교, 지역, 산업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대통령은 친필 휘호를 남겼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방송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줄어들었고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보며 느끼는 감격의 정도도 약해졌다. 개인과 개인, 국민과 국가간의 벽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21세기 들어 개인의 정보 욕구가 높아지면서 휘호나 담화 같은 일방적 통보보다는 쌍방향 소통 기회를 늘리는 쪽으로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변해왔다. 사회구성원의 성격이 보다 다양해지면서 한 구절의 휘호보다는 친절한 설명과 진심 어린 설득이 필요한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반세기 이전부터 대통령들이 써 온 휘호를 살펴보면 국책 방향의 변화상은 물론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의 시야도 함께 가늠할 수 있다.
6·25전쟁을 계기로 북진통일의 의지를 강하게 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격전지를 직접 방문해 승전을 독려하는 휘호를 남겼다. 1951년 치열했던 강원 양구 펀치볼 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제1연대에 내린 ㉠‘무적해병(無敵海兵)’과 “위엄을 안팎에 떨치라”며 백선엽 대장에게 내린 ㉡‘멸진내외’가 대표적이다. 또, 중공군을 물리치고 북진 교두보를 확보한 대붕호는 아예‘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로 개명하고 휘호석을 세우기도 했다.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또 다시 패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③‘민주구국(民主救國)’을 썼다. 개발과 발전을 향한 독재적 드라이브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표현한 휘호로 ④‘증산흥국(增産興國)’과 함께 민생을 걱정하는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국민교육헌장 첫 문단에 등장하는 ㉢‘민족중흥(民族中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휘호로 즐겨 쓰던 문구이자 평생의 사명이었다. 1965년 고대신문사에 남긴 휘호 ⑨‘조국근대화(祖國近代化)’는 그 후 새마을 운동의 기조가 되었고‘민족중흥’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이념을 고스란히 담은 휘호로 평가 받고 있다. 같은 해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을 격려하며 쓴 ②‘해양진출(海洋進出)’과 1970년 신년 휘호 ⑥‘개척과 전진’은 경제발전을 위한 진취적 마음가짐을 강조한 경우다. 서울신문 창간기념일에 쓴 ㉥‘사회정화’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뿌리 뽑는 것이 언론의 주된 역할이라는 그의 언론관을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이율배반적인 언론관이 휘호에 그대로 남은 경우도 있다. 1980년 언론통폐합을 지휘해‘정론직필’하려는 언론을 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1988년 1월 濟州新聞(제주신문) 창간을 축하하며 ⑧‘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휘호를 써서 보냈다.
①‘대도무문(大道無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휘호 문구다. “누구나 큰 뜻을 품으면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처럼 민주화를 위해 헤쳐 온 고난과 역경을 표현하듯 힘차게 써 내려가는 것을 즐겼다. 역시 오랜 기간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과 더불어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을 민주화 동지들에게 자주 써주었다. 그러나 재임기간에는 휘호를 많이 남기지 않았다.
새해 첫날 한복을 입은 대통령이 한자어 신년휘호를 쓰는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육로방북 때 쓴‘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과 같은 한글 휘호를 남겼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대통령의 소통 방법에도 변화가 생긴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 행사 때 남긴‘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⑤ 강물처럼’이나 ⑦‘사람 사는 세상’을 즐겨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날 쓴‘국민을 섬기며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데 온몸을 바치겠읍니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명한 휘호‘내 일생(一生) 조국(祖國)과 민족(民族)을 위(爲)하여’를 떠올리게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4대강 사업 세종지구 내 금강과 미호천이 만나는 지점의 ㉤‘합강정(合江亭)’현판 글씨를 직접 쓰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친필 휘호를 자주 쓰지 않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안전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면서 지난해 12월 중앙119구조본부 출범에 맞춰 ㉣‘국민안전의 버팀목’이라는 한글 휘호를 남겼다.
전직 대통령들의 친필 휘호는 대부분 개인이 소장하거나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문화재 등의 현판으로 제작돼 걸린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문화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전국 56개의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 중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42개에 이른다. 재임기간이 18년으로 긴데다 광화문과 현충사, 불국사 등 문화재 복원사업을 지시한 대통령으로서 복원된 문화재에 직접 글씨를 남긴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만큼 자주 수난을 당하는 것 또한 그의 친필 현판들이다.
박 전 대통령이 문화재 복원을 추진하며 기치로 내건‘민족정기’는 그의 운명과 묘하게 얽혀있다. 1979년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내린 박 전 대통령은 그 해 10월 서거했다. 그로부터 22년 후 한국민족청년회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삼일문의 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무단 철거했다.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은 친필 현판 수난은 윤봉길 의사를 모신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도 일어났다. 2005년 3월 1일 한 사회단체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무단으로 떼어내 세 동강을 낸 것이다. 이 현판은 다시 동일 글씨체로 복원됐다.
2005년 시작된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광화문에 올라간 것은 1968년,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재건한 직후였다. 2005년 문화재청이 현판 교체를 발표한 후 2010년 고종시대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자체 현판으로 교체했지만 3개월 만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아직도 복원 작업 중이다.
대통령 현판의 수난은 문화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 서울대 학생들은 민주화대총회 도중 박 전 대통령이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도서관 현판 휘호‘민족의 대학’을 떼어내 소각해 버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7년 한국은행 신관 준공 당시 내린 휘호 ‘통화가치의 안정’은 퇴임 후 비리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체된 경우다. 표면적으로는 개정된 한은법 상 한은 설립 목적이 ‘통화가치의 안정’에서 ‘물가안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나 그 이전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장본인의 휘호를 한국은행에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노조의 철거 요구가 이미 거셌다.
사진부 기획팀=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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