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망고' 유행 타고 수제품 열풍 서문·방천시장·공방 등 명소 부상
연인·부부 데이트 코스로 각광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것 매력, 제품보다 만들기 과정·소통에 의미
굵은 털실 모자인 ‘루피망고’를 비롯, 방향제와 양초, 팔찌 등 각종 패션ㆍ생활소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수제품 만들기 열기가 뜨겁다. 중장년층의 사랑방인 서문시장에도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김광석길로 유명한 방천시장 일대에는 각종 공방이 잇따라 들어설 정도다.
올 겨울 수제품 열기는 루피망고가 선도하고 있다. 서문시장 털실 판매점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일부 연예인들이 착용하며 유명세를 탄 루피망고는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털실로 만든 모자로, 기성품 시중가는 20만원을 호가한다. 이 회사의 ‘정품’ 실 값만 모자 한 개를 만들려면 1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서문시장 아진상가에 진을 치고 있는 털실판매점 ‘뜨개방’에 가면 정품 못지 않은 품질의 털실 값 2만~3만원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루피망고를 만들 수 있다. 아진상가에는 10개 가량의 털실판매점이 성업 중인데, 요즘 어린 자녀를 둔 미시주부는 물론 미혼의 아가씨, 학생까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에서는 털실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뜨개질 방법까지 일일이 가르쳐 준다. 초보자라도 주인의 지도로 30분 가량이면 루피망고를 만들 수 있다. 좁은 가게 한구석에서 직접 만들어본 뒤 추가로 털실을 사서 집에서 가족이나 친지들 선물용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이 때문에 이 상가는 동성로 못지않게 젊은 여성들이 넘쳐난다.
서문시장에서 뜨개실 도매점을 하는 장분옥(56)씨는 “지난달부터 갑자기 루피망고를 뜨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기 시작했다”며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하루 20~30명은 찾을 정도”라고 말했다.
고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지난 주말 18개월 난 딸을 데리고 뜨개방을 찾은 김소영(31)씨는 “지난달엔 아이와 제 모자를 만들었고 이번에는 목도리에 도전했다”며 “뜨기 쉽고 착한 가격에다 다양한 색상의 털실이 많아 그만”이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이 루피망고의 성지라면 김광석길 옆 방천시장 일대는 공방의 메카다. 이곳에서는 양초 향초 액자 등 다양한 패션 및 생활소품 만들기를 가르치고, 재료도 판매한다. 특히 이들 공방에는 여성뿐 아니라 연인관계의 남녀도 많이 찾으면서 이색 데이트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내와 함께 방천시장 공방을 자주 찾는다는 이수환(31)씨는 “이번엔 석고방향제와 팝 아트 액자를 만들었는데, 추운 날씨엔 이곳이 데이트 겸 나들이코스”라며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방향제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으로, 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 공방을 찾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나만의 것이지만 함께 만드는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방천시장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남 희(37)씨는 “수제품 만들기는 수제품 그 자체에 대한 의미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며 웃고 떠드는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다”며 “소통의 순간 그 자체를 소중하게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현(27)씨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사회분위기가 침체할수록 수제품 만들기와 같은 감성코드에 끌리기 마련”이라며 “디지털시대지만 손맛에 빠진 아날로그형 사람은 더욱 늘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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