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1차투표서 과반 당선
삼성맨 출신으로 정계ㆍ금융계 이력
투자 손실로 중징계 뒤 명예회복도
불황 속 세제혜택 간절한 업계
대외협상력 내세운 황 회장 택해

‘검투사(글래디에이터)’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황영기(64ㆍ사진)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20일 신임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되며 다시 한번 화려하게 금융권에 복귀했다. 은행ㆍ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정치권까지 넘나든 화려한 이력과 중징계ㆍ무죄 판결을 반복한 인생역전이 말해주듯 이번에도 그의 당선은 예상을 뒤엎은 드라마였다. 검투사를 수장으로 선택한 금융투자업계는 침체 탈출의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이날 164개 회원사 중 161개사가 참석한 임시총회에서 황영기 후보가 50.69%의 득표로 3대 회장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최종 후보 3인 가운데 김기범 전 KDB대우증권 대표는 39.42%,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는 8.37%의 표를 얻었다.
금융투자업계는 황 신임 회장의 당선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과반을 얻어야 당선되는 1차 투표에서, 3명의 후보 가운데, 그것도 막판까지 유력 후보로 꼽히던 김기범 전 대표까지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당선 직후 “선거 전 164개 회원사를 일일이 만나 정책 관련 경험과 대외 협상력 등을 호소했던 것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금융투자업계가 당면한 현실은 어렵지만 정부, 국회, 언론을 상대로 업계의 고민과 건의사항을 관철시켜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 회장은 골수 증권맨의 눈으로 보자면 ‘외부인’에 가깝다. 서울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국 유학 뒤, 외국계은행(뱅커스 트러스트)을 거쳐 다시 삼성(회장 비서실, 삼성전자 자금팀장)으로 돌아 온 삼성맨 출신. 2000년대 초반 자산운용사(삼성투신운용)와 증권사(삼성증권) 사장을 잇따라 역임했지만 이후 우리금융ㆍKB금융지주 회장으로 보폭을 넓히며 증권맨이라기보다는 금융그룹 경영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으로 이명박 후보의 대선캠프에도 몸담았고, 2009년 KB금융지주 회장 재직 시절에는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의 책임자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고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당시 징계에 반발해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명예는 일부 회복했으나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도전했다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업계에선 황 회장의 이 같은 특이한 이력이 오히려 이변의 배경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황 회장 본인이 말했듯 “대외 협상력”에 대한 업계의 갈증이 주효했다. 최근 주식거래 감소로 극도의 불황을 겪는 금융투자업계는 거래를 유인할 각종 세제혜택이 간절하다. 장기펀드ㆍ해외펀드 등의 세제혜택 현실화를 공언한 황 회장의 추진력과 대외 인맥이 표심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또 ‘증권맨 출신의 전임 회장들이 과연 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는 불만과 1대(황건호)와 2대(박종수) 회장 모두 대형사(대우증권) 출신이었던데 대한 비(非)대우ㆍ소형사 회원들의 반감도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투표에 참가했던 한 업체 대표는 “업계의 숙원사업을 반드시 풀겠다는 황 후보의 구체적인 공약과 그간의 경력이 말해주는 추진력이 공감대를 얻은 결과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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