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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홍준표 지사와 삼성스포츠단에

입력
2015.01.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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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육관이 2년8개월여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 17일 재개관했다. 밋밋하던 돔형 외부디자인은 부채춤, 강강술래, 탈춤의 곡선을 형상화해 일신했으며, 실내 역시 최첨단 음향시설 도입은 물론 코트 바닥과 조명, 선수들의 휴식공간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1963년 2월1일 문을 연 장충체육관은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실내스포츠의 심장으로 박동했다. 1960~80년대 중반까지 동대문운동장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의 성지로 위용을 자랑했던 장충체육관이다. 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가 탄생했고, 김일이 박치기로 프로레슬링을 제패했던 곳이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다. 박정희(8대), 최규하(10대), 전두환(11대) 3명의 대통령이 장충체육관에서 당선됐다.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이다. 이쯤 되면 한국 현대사의 증인으로 불려도 전혀 무리가 없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장충’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잠실 소재 올림픽 실내경기장이 최신시설을 뽐내면서 들어선 까닭이다. 100년 역사의 동대문 운동장도 올림픽 주경기장에 자리를 내주고 빛을 잃기 시작했다.

압구정으로 상징되는 강남시대 개막과 동시에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면서 '장충'과 '동대문'이라는 이름은 무상하게도 철거론에 휩싸였다. 실제 동대문야구장과 운동장은 나란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장충은 서울시로부터 ‘역사성’을 인정받아 살아 남았다. 그러나 굳이 역사성을 따지자면 동대문 운동장이 훨씬 높이 평가 받아야 할 터다. 동대문 운동장 부지는 조선시대~대한제국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훈련원 부지다. 특히 1906년 한국 최초로 야구경기를 치른 곳으로 기억된다.

이즈음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스포츠 명소들을 되짚어 보자. 대표적으로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과 중구 무교동 대한체육회관, 그리고 장충체육관을 꼽을 수 있다. 잠실 학생체육관과 목동 야구장 등은 아직 평가대상으로 삼기엔 연륜이 너무 짧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 서울의 위상치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나마 무교동 대한체육회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진국들은 경기장을 문화 유산의 반열로 올려놓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팀들은 100년이 넘는 야구장 역사를 자랑스레 간직하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파크와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 구장을 보자. 각각 1912년, 1914년에 완공된 이들 구장은 리모델링을 거쳐 여전히 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비좁은 관중석과 격에 어울리지 않은 구장 크기로 가끔 불편을 주지만 할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가 같은 공간에서 야구를 즐겼다는 ‘스토리텔링’은 값을 매기기 불가능하다.

어디 야구뿐이랴. 테니스 대회장도 그렇다. 마침 지금 호주오픈이 멜버른파크 테니스코트에서 한 창이다. 1905년 막을 올린 호주오픈은 100년이 넘는 장구한 전통을 뽐내면서 4대 메이저대회 첫 대회로 굳건한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과 중국이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버른파크 경기장을 능가하는 첨단 코트를 만들기는 쉬워도 대회 역사와 전통은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디자인팀장(전무)으로 영입한 이돈태씨는 영국 런던왕립예술학교 출신이다. 그는‘기업이 망하는 원인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상하지 못해 망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고 한다. 이 말을 스포츠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팀이 인기가 없고 팬들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를, 시합에서 패배했다는 1차적인 원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반성해볼 일이다.

구단이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밀려나, 경남도의 재정만 축냈다고 발끈한 홍준표 도지사와 기업실적도 나쁜데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럭비단 해체를 준비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측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낡고 오래된 경기장 역시 마찬가지다. 함부로 철거를 입에 올리지 말고 사소한 에피소드는 물론, 스타 선수와 얽힌 사연을 발굴해 보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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