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은 이십여 년 전 아버지가 마련해주셨다. 큰 맘 먹고 사주신 좋은 책상이지만 이제는 아주 낡았다. 여기저기 흠집이 생겼고 조금씩 삐걱거리기도 한다.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바로 이곳이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여기저기 쌓여 있어도 물건들이 함부로 흐트러져 있어도 먼지가 쌓여 있어도 그렇다. 서랍 속에는 그다지 소중하지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잘 쓰지도 않는 통장, 도장, 증명서 같은 것들이 첫 번째 서랍 속에 들어 있다. 두 번째 서랍 속에는 칼과 가위, 풀과 테이프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클립이나 자석, 핀이나 줄자는 쓸 일이 별로 없는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낡은 지갑과 다 쓴 수첩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메모나 누군가에게 받은 카드들도 여기저기 끼어 있다. 어릴 때 쓰던 컴퍼스, 각도기, 학생증도 들어 있으니 서랍 속은 구석기 시대다. 열쇠고리, 손수건 같은 관광지 기념품이 눈에 띌 때도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 말이다. 물건에 주인의 영혼이 깃든다는 미신에 빠진 것일까. 꼭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세목을 나열하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 느껴진다. 나는 기억과 망각 위에 불완전하게 서 있지만, 물건들은 나보다 더 정확히 그 시간을 새기고 있는 것 같다. 낡은 물건들이 내가 잊고 지내는 과거 기억들을 선물해주는 것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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