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이주여성 구제 길 열려" vs 남성단체 "위장 결혼에 악용"
'부부 강간' 개념은 2009년 처음 법원에서 인정된 이래 점차 인정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사상 최초로 '부부 강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은 부산지법이다.
2009년 필리핀인 아내를 가스총과 흉기로 위협,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남편 L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형법에 강간죄의 대상으로 규정된 '부녀'에서 아내가 제외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봤다. 그전까지 법원은 민법상 부부의 동거 의무를 중시해 부부 사이에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부 강간'을 인정한 역사적인 첫 판례가 나왔지만 L씨가 항소심 진행 도중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해 이 사건은 공소 기각 처리됐다.
이후 서울고법은 2011년 부인을 흉기로 위협하고 강제로 성관계한 남편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부부 강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례는 2013년 확립됐다.
대법원은 그해 5월 판례를 변경, 흉기로 아내를 위협하고 성폭행한 남편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강간의 피해자인 '부녀'에 법률상의 아내가 포함된다고 규정하면서도 부부 사이의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후 '부부 강간'이 죄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 됐지만 어디까지가 폭행이고 협박인지를 따지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위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껏 법원이 '부부 강간'으로 인정한 사건은 거의 모두가 흉기가 동원된 경우였다.
따라서 이번 '흉기 없는 부부 강간' 인정은 법원의 '부부 강간' 인정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가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계는 남편의 성폭력에 시달려온 적지 않은 이주여성들에게 구제의 길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많은 여성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막상 재판까지 가져가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적지 않은 이주여성들이 구제받을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결혼을 한 한국인 남편 중에는 성관계가 당연한 권리인데 왜 여자가 거절하느냐는 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다"며 "상담을 하다 보면 포르노 영화를 틀어놓고 따라 하게 하게 하는 등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남성단체는 이번 판례가 위장 결혼을 부추기고 남성들이 국제결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카페 '국제결혼피해센터'를 운영하는 안재성 대표는 "위장결혼을 하려는 외국 여성들이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부하거나 폭력을 유도해 남편의 귀책 사유를 만들고 이혼해 위자료를 받고 한국 영주권까지 딸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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