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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 비례대표제가 다당제 유지의 비결

입력
2015.0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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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대선 사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한국의 ‘시대정신’으로 등극했다. 비록 정부·여당은 총선과 대선 당시의 공약을 저버리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의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대정신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증대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도로 심해지며 시대정신을 연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있다. 모델 국가를 상정하여 거기서 한국의 희망과 비전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에 비해선 다소 늦게 등장했지만, 최근엔 가장 각광받는 모델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모델의 핵심은 ‘합의제’이다. 이 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이 노동과 자본 그리고 농업섹터의 단체들이 참여하는, 정부 주재의 협치체계 내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이처럼 항상 강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므로 이 나라의 경제민주화 및 복지국가 수준은 세계 최상급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돼왔다.

결국 사회적 합의주의가 오스트리아 복지국가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인데, 사회적 합의주의가 그렇게 발달한 것은 ‘구조화된 다당제‘ 덕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적 대화는 참여 주체들 간의 ‘동등한 파트너십’이 보장될 때에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노측이 사회협약의 체결과 그 이후의 입법화 과정에서 사측에 비해 불리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 일쑤라면 노사정 합의 체계는 붕괴되고 만다.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의 선호와 이익이 무시되고 경시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사회적 대화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의 정당체계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민당, 자본가와 농민을 대표하는 국민당, 우파 민중정당인 자유당, 그리고 비전통적 좌파 정당인 녹색당 등의 다양한 이념 및 정책 정당들로 구조화돼 있다. 의회정치는 항상 이 넷 이상의 유력정당들이 각기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의석점유율을 확보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어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 여러 정당들이 대표하는 사회경제 집단들의 정치력 역시 상호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때문에 예컨대 노동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매개로 한 정책결정과정에서 자본에 의해 무시당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노동이 오스트리아의 가장 강력한 정당 중의 하나인 사민당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연유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론 약자일지라도 정치적으론 결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의 이 구조화된 다당제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결합돼 있어,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 형태는 통상 ‘포괄형’ 연립정부이기 마련이다. 어느 정당도 홀로 의회의 다수당이 될 수 없는 구조 하에서 안정적인 정부의 구성은 오직 상이한 이념과 대표성을 지닌 여러 정당들 간의 연립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노동 등의 사회경제적 약자집단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연립정부에 참여하여 ‘합의제 정치체제’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언제나 높다는 것이고, 따라서 약자집단의 정치력이 그만큼 안정적으로 보장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조화된 다당제가 의회는 물론 정부 역시 합의제형 정치기구로 작동케 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정치적 길항력이 충분히 생성됨으로써 사회적 합의주의가 순항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합의제의 근간인 이 구조화된 다당제가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례대표제 때문이다. 비록 선거구는 9개 주와 39개 지역으로 나뉘어있지만 오스트리아의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정당선호에 따라 정당투표를 한다. 그 후 각 정당은 지역, 주, 연방 차원에서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득표-의석 간의 비례성 보정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결국 자신들의 전국 득표율에 비례하는 만큼의 의석을 배분 받게 된다. 오스트리아 선거제도의 이 비례성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경우보다 더 높을 정도로 우수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선거제도 환경에서는 일정 규모의 시민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이념과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면 어느 정당이든 의회에 진출할 수 있고 유력 정당이 될 수 있다. 적게는 4%대에서 크게는 30%대의 득표율을 갖춘 다양한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이 오스트리아의 의회 및 정부에 상시적으로 포진해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한국인들에게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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