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5%를 기록했다. 집권 이후 최저치다. 지지율 하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어떤 정부든 집권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김영삼정부의 세계화 전략, 김대중정부의 외환위기 대응, 노무현정부의 지방분권 정책, 이명박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돌아보라. 오히려 의욕 과잉이 논란을 이뤘지, 일을 하지 않은 게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는 게 없다. 대선 공약 파기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창조경제’, ‘통일대박’, ‘규제개혁’ 등 담론만 무성했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이전 정부들과 비교할 때 차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에도 예외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게 있다.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이 그것이다.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이란 집권 초반 새 정부에 가졌던 기대가 빠른 속도로 실망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국정수행 지지율로 잘 나타난다. 정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집권 초반의 높은 지지율은 1, 2년 안에 30~40%의 지지율로 하락하고, 이후 20~30%의 지지율로 남은 기간을 견뎌낸다. 짧은 열광과 긴 환멸의 사이클은 정부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박근혜정부 역시 이제 열광과 환멸의 기로에 서 있다.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이 나타나는 일차적 원인은 국정 운영 능력에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노무현정부에겐 ‘낡은 정치 청산’을, 이명박정부에겐 ‘경제 살리기’를, 박근혜정부에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열망했건만, 이 과제들을 제대로 이행하는 데 정부의 행정 및 정치 역량은 부족했다. 행정 역량이 정책을 치밀하게 입안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능력이라면, 정치 역량은 해당 사안에 따른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문제는 세 정부 모두 이런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등장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정부가 마감하기 전에 사라졌고, 경제 살리기는 철 지난 토건정책인 4대강 사업으로 대체됐으며,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정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로 둔갑했다. 정부의 취약한 소통 역량 또한 기대가 환멸로 바뀌는 데 기여했다. ‘두 국민 정치’와 ‘두 국민 사회’가 유독 두드러진 우리나라에서 반대 세력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소통 능력은 매우 중요한 정부의 미덕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예외 없이 오만과 불통의 리더십으로 귀결됐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놓인 구조적 조건이다. 국내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룬 발전주의의 종언 이후, 국제적으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의 전환 이후, 우리 사회가 대면해온 것은 저성장 시대다. 4%를 넘기 어려운 성장률이라는 구조적 강제 아래 지속가능한 재정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최적 조합을 정부가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여기에 점점 무게가 더해지는 저출산ㆍ고령화와 노동시장 변동, 그리고 세대단절로 드러나는 문화의 군도화(群島化) 경향이 결합해 사회가 활력을 상실하고 개인이 원자화돼 가는데도 정부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과 결별하기 위해선 정부의 태도가 변화돼야 한다. 55%에 달하는 국민은 박근혜정부의 소통 부재, 인사 난맥상, 공약 파기 등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의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 사회를 더욱 갈라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집권 3년을 맞이해 박근혜정부는 인적 쇄신과 소통 강화를 포함해 국정운영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내년과 후년의 총선 및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
더하여, 다가오는 미래를 예비하는 장기 국정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령화든 에너지 고갈이든 지금부터 준비해두지 않으면 재앙이 다음 세대의 삶을 짓누를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환멸의 시간이 이렇게 일찍 열리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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