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제자들과 함께
신문ㆍ잡지ㆍ도서관 샅샅히 훑어
번역ㆍ번안 작품까지 총망라
"작품 가치 판단은 후학들의 몫"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한국 근대소설을 총망라한 ‘한국근대소설사전’(고려대학교출판부)이 출간됐다. 송하춘 고려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제자들과 10년 간 공동작업 끝에 내놓은 책에는, 개화기 문학의 대표 장르인 신소설을 비롯해 번역?번안 소설 등 1890~1917년 쓰여진 소설 1,270편이 수록돼 있다.
송 교수는 “편의상 근대소설의 시기를 고전소설 이후인 1890년부터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꼽히는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1917년까지로 잡았다”며 “다만 1917년 이후 1950년대까지도 후기 신소설이 계속해서 출판 유통된 점을 고려해 시기와 관계 없이 신소설은 모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소설 집필과 평론에 매진해온 송 교수가 사전 편찬을 기획한 의도는 “이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소설을 찾아내 한 곳에 모아보자”는 것이었다. 의도에 걸맞게 송 교수와 제자들은 사전에 등재할 작품 목록을 미리 확정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어디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자는 취지였다. 송 교수 팀은 신문과 잡지를 섭렵하는 것으로 시작해 국내 각 대학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을 방문해 소장된 신문과 잡지 목록을 샅샅이 훑고 장편소설 단행본 목록을 뒤졌다. 작업이 웬만큼 진척된 후에는 외국의 유명 대학 도서관도 찾았다. 일본 와세다대, 중국 베이징대 인문학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도서관 등을 방문하고 여기서 다른 주요 대학 도서관과 연결해 발굴작업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수집한 1,270편의 소설을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뒤 서지사항과 줄거리, 참고사항을 붙였다. 서지사항에는 제목, 출판사, 발행연도, 면수, 가격정보, 작가명 등의 상세한 정보를 제시하고 자료가 훼손돼 서지정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참고사항에서 보충 설명했다. 줄거리는 작품을 구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접 읽고 요약했다.
송 교수는 해당 시기의 창작소설뿐 아니라 번역ㆍ번안소설까지 빠짐없이 모은 것을 책의 큰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가령 1925년 5~8월 중외일보에 최서해의 번안소설로 연재됐던 ‘사랑의 원수’는 원작자나 원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서양에서도 유명한 탐정소설’로만 소개돼 있는데, 송 교수팀은 내용으로 미루어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노란방의 비밀’로 추정된다며 작중 인물과 설정이 어떻게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번안되었는지를 써 놓았다. 송 교수는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정에 비출 때 신소설, 번역ㆍ번안소설은 같은 뿌리 안에서 나고 자란 시대적 산물인데 (신소설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전 편찬을 계기로 번역?번안소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3년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을 펴낸 송 교수는 ‘한국근대소설사전’ 을 출간함으로써 대한민국 근?현대소설을 집대성하는 과업을 달성했다. 그는 “미발표 작품을 발굴해내는 것보다 모든 작품을 한 줄로 꿰는 데 무게를 뒀다”며 “이중 어떤 작품이 더 연구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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