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파밍 피해, 은행도 일부 책임"
배상책임 첫 인정에 대책 마련 분주
홈피에 고객들 주의 안내문 올리고
탐지시스템 도입 등 보안 조치 강화
"개별 대책은 금융사기 막기 역부족
피해자 구제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가짜 금융기관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해 돈을 가로채는 ‘파밍’ 금융사기에 대한 은행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은행권이 전자금융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전면전에 나섰다. 날로 고도화하는 사기 수법에 맞서 보안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사고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구제나 근본적인 보안대책과는 거리가 먼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부장 전현정)는 15일 파밍 피해자들이 신한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 금융회사 10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36명 중 33명에게 모두 1억9,1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인인증서 위ㆍ변조에 따른 손해를 금융회사가 배상하도록 한 전자금융거래법을 근거로 “피해자들이 보안카드 번호 등을 모두 노출하는 중과실을 저질렀다고 해서 은행이 무조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파밍 피해에 대한 금융회사의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이번 판결은 현재 비슷한 내용으로 진행 중인 집단소송 등 전자금융사기 관련 재판에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은행권은 “항소 여부 등을 고려하겠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기업은행은 수법이 교묘해진 다양한 전자금융사기 사례를 홈페이지에 고객 안내문 형식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30~60초마다 무작위로 비밀번호를 생성하는 기존 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OTP)와 달리 특정 거래에만 유효한 번호를 인증정보로 받아들이는 거래연동 OTP 도입도 검토 중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업무개선그룹 담당 부행장을 중심으로 10개 유관부서장이 참여하는 ‘대포통장 근절 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20세 미만 고객이나 6개월 이상 미(未)거래계좌에 대한 출금과 이체 한도를 하향 조정하고 수시입출금 계좌의 첫 페이지에 전자금융사기 위험성 안내문구를 넣기로 결정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피싱ㆍ파밍 예방 안내를 홈페이지에 웹툰 형식으로 게재하고 있다. 신종 전자금융사기가 발견됐을 때 고객에게 주의를 당부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3월 이후 총 4편의 웹툰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아울러 ‘피싱ㆍ해킹 금융사기 보상보험’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KB마음편한통장’을 내놓기도 했다.
농협은행은 최근 IC칩을 내장한 ‘NH안심보안카드’를 5개 영업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등록된 휴대폰에 안심보안카드를 접촉시켜야만 거래가 되는 보안매체다. 위험요소를 사전에 감지해 차단하는 이상금융거래 탐지시스템(FDS)도 지난달 도입했다.
그러나 금융사기 예방에만 방점을 찍은 개별 은행들의 보안 대책은 전자금융사기 거래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가 마음 놓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선 업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도 내놓아야 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사고 예방책 수립을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할 게 아니라 소비자 피해 구제 대책 마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