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 때 경찰 장비는 0.025% 동일 휴대용은 0.03%, 0.06% 제각각
거의 반도체 센서 사용… 반응 민감, 참고용으로 사용하고 맹신은 금물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 운전을 하자니 단속이 걱정이네….’
식사에 곁들인 소주 한두 잔, 가볍게 마신 맥주 몇 모금에 차를 가져온 운전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몸 상태는 차를 몰아도 거뜬하다고 생각되지만 단속에라도 걸리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의 유혹이 생기는 애매한 상황에서 객관적인 알코올 수치를 손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게 ‘휴대용 음주측정기’다. 2만여원의 돈만 들이면 곧바로 운전대를 잡을지 말지, 측정 결과를 알려준다.
1990년대 말부터 국내에서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휴대용 측정기는 최근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되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제품마다 ‘참고용으로 사용하되 음주 단속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술을 한잔이라도 마셨다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명시돼 있지만,‘측정 결과 수치가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면 이를 근거로 운전을 하겠다’는 게 구매자들의 속내다.
그렇다면 휴대용 측정기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 취재팀은 경찰 협조를 받아 휴대용 음주측정기와 경찰 장비를 비교해 봤다. 결론은 휴대용 음주측정기를 맹신했다간 큰 코를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기자 두 명은 18일 서울 중부경찰서 교통센터를 찾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A사의 휴대용 측정기(약 2만원)를 경찰 음주 측정장비 ‘SD400 PLUS’와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기자들이 직접 각각 소주 반 병, 두 병을 마시고 30분 뒤 휴대용 측정기와 경찰 장비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음주단속과 같은 조건에서 소주 반병을 먹은 실험자 1이 측정기에 입을 대자 휴대용 기기에서 0.06%, 경찰 장비에서는 0.025%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나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입건 여부(면허정지)를 가르는 혈중 농도 기준은 0.05%. 오히려 휴대용 측정기에 나타난 수치대로라면 면허정지 100일에 해당된다. 하지만 실험을 반복하자 결과는 달라졌다. 경찰 측정기에서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25%로 동일하게 나타난 반면, 휴대용 장비에서는 수치가 0.03%로 확 떨어졌다. 측정 때마다 결과가 들쭉날쭉해 입건 여부가 뒤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김동성 중부서 교통안전계 팀장은 “휴대용 장비의 수치가 더 높게 나올 경우 범죄 예방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측정치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0.035%에 달하는 경찰 장비와의 수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주 두 병을 마신 실험자 2는 휴대용과 경찰 장비 각각 0.15%, 0.115%의 혈중 농도가 측정돼 모두 면허취소 기준(0.1% 이상)을 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휴대용 장비의 측정 결과는 세 차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같은 성능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측정기에 들어가는 센서 부품이 달라서다. 업계에 따르면 센서는 크게 시중 판매용인 반도체, 경찰 장비에 들어가는 백금, 연구에 쓰이는 적외선 방식 3가지로 구분된다. 20년 넘게 경찰청에 측정 장비를 납품해온 ‘아세아 통상’ 관계자는 “담배 연기나 온도 등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도체 센서에 비해 백금은 오직 알코올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훨씬 높다”며 “1만~10만원대의 시중 측정기를 200만원에 달하는 경찰 기기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도 “바람과 추위 등 외부환경 변화가 심할 때 비교 실험을 했다면 차이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 업체도 오차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제품 단가를 고려했을 때 경찰 장비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단순 참고용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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