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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흉악범죄 시효 배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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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흉악범죄 시효 배제해야"

입력
2015.0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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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증거불충분 이유 불기소 재분석 결과 의심여지 충분

이달 중 재정신청 결론 날 듯

우리나라 사형범죄 공소시효 짧아, 韓 25년 中 30년 日 무기한

1999년 학원에 가던 김태완(당시 6세)군은 괴한이 뿌린 황산을 뒤집어 쓰고 49일간 투병 끝에 숨졌다. 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공소시효 만료 3일을 앞둔 지난해 7월4일 태완군 부모는 유력 용의자를 살인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하자 공소시효 마지막 날, 법원에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적합했는지를 가려 줄 것을 요구하는 재정신청(裁定申請)을 한 상태다. 그 동안 2차례 법정심리를 여는 등 고심해 온 대구고등법원 담당 재판부는 내달 중 법원 인사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이달 중에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구리소년’ 사건처럼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박경로(47ㆍ사진) 변호사는 “만약 이 사건 공소시효가 끝난다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 범인의 어깨가 가벼워질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도 흉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피력했다. 그를 만나 이 사건의 개요와 공소시효의 의미, 문제점 등을 짚어 보았다.

_‘황산테러’사건, 어떤 사건인가.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효목동 한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 군이 정체불명의 남성이 뿌린 황산을 얼굴과 몸에 맞고 49일간의 사투 끝에 숨졌으나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고, 2013년 김군의 부모가 대구참여연대와 함께 재수사를 청원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하지만 살인죄를 적용하더라도 공소시효(15년)는 지난해 7월7일자로 끝났다. 다만 김군의 부모가 유력용의자 A씨를 상대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낸 만큼,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A씨의 공소시효만 정지된 상태다.”

_재정신청은 보통 석 달 내에 결정이 나온다고 하는데.

“3개월은 권고사항이지 강행 규정이 아니다. 워낙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인 만큼 재판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느라 결정이 늦어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재정신청 대상이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것 중 일부만 해당됐으나 2007년 모든 범죄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재정신청 사건이 폭주하는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건도 1년씩 걸려 결정되는 것도 많다.”

_그 동안 재정심리는 어떻게 진행됐는가.

“재정신청사건은 대개 서면심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사건은 법정에서 증인을 직접 불러 2차례의 증인신문을 실시했다. 지난 9월 실시된 첫 심리는 비공개로 김 군의 부모가 출석해 사건에 대한 의견과 요구사항 등을 청취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건발생 직후 병원 후송 과정과 태완군의 투병 중 진술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유가족은 이날 심리에서 용의자로 지목한 인물의 옷과 신발 등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황산반응 분석 자료를 재판부가 정밀 검토해 줄 것으로 요청했다. 지난달 2차 심문기일에서는 참고인 조사가 있었다. 목격자와 그 주변사람들이다. 변호인 측은 지금까지 나왔던 자료와 재정신청과정에서 내 놓은 결과물을 종합해 최종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다. 재판부도 법에 따라 신중한 판단을 하겠다고 했다.”

_경찰과 검찰은 A씨를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15년이나 지났는데, 그때 없던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 있겠나.

“시간적, 절차적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숨진 김군의 진술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 뒤늦게 방송사 등에서 실시한 전문가분석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태완군의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 거짓진술인 셈이다. 당시 간과했던 증거도 진전된 현대과학 수사기법을 이용해 새로운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_경찰 수사가 부족했다는 뜻인가.

“아쉬운 부분은 많다. 처음 재수사를 촉구했을 때라도 바로 움직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소극적이었다.”

_A씨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생사람 잡을 수도 있다.

“늘 고민하는 문제다. 억울하게 10여 년간 범죄자로 낙인 찍혀 살아온,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재조사와 관련 자료를 분석해 보면 그는 의심받을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피해자, 용의자 모두를 위해 그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가려져야 한다. 김군의 부모도 경찰이 ‘의심 가는 용의자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잡지 못했다’는 식으로 명확하게 설명했더라면 그 당시 수긍했을 것이라고 한다.”

_제3의 인물이 뒤늦게 진범으로 밝혀진다면.

“A씨 외 다른 누군가 진범으로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만료돼 그는 처벌받지 않는다. A씨에 대한 시효만 재정신청 심리가 끝날 때까지 정지된 것이다.”

_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공소시효 제도는 어떤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지만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 살인죄의 경우 일본은 시효가 없고 중국은 30년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다. 공소시효제도를 두는 것은 사건발생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발견한 증거는 불명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DNA 증거 등 과학기술과 수사기법의 발전으로 불합리한 경우가 생기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_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뜻인가.

“아니다. 시효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반인륜적 흉악범죄, 사회 구성원들이 시간이 지나도 꼭 처벌해야 한다고 합의한 사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적용을 배제하자는 의미다. 영화 ‘도가니’의 영향으로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강간, 준강간, 강제추행, 준강제추행은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됐다. 법무부도 2012년 ‘흉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이 것이 통과되면 김군과 같은 사건도 시효에 구애 받지 않고 지속적인 수사가 가능해 질 것으로 본다.”

배유미기자 yum@hk.co.kr

약력

▦경북대 법학과 졸업 ▦제45회 사법시험 합격 ▦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 구조위원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법무법인 참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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