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꼽으며 참 좋은 때라고 여겼다. 소한(小寒)을 한참 지난 대한(大寒) 직전이니, 추위는 한풀 꺾일 것이었다. 특별한 방한장구 없이도 한 나절 강바닥을 헤맬 만했다. 반면 얼음장 아래 찬물에 갇힌 물고기들은 기운이 빠져 느릿하게 돌아다니거나 돌이나 바위 아래서 잠을 청하고 있을 게 뻔했다. 겨울 천렵(川獵)의 으뜸인 얼음치기나 돌치기에 이보다 좋은 때가 없지 싶었다. 장화 한 켤레와 대형 해머만 있으면 얼음장이나 돌을 내리쳐서 그 아래 물고기를 기절시켜 건져내는 간단한 방법이다.
▦ 그제 저녁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초등학교 친구들의 새해 첫 모임에 갔다. 연말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초등학교 동기 송년회에 꼬박꼬박 참석해 준 고향 친구들의 정성이 고맙고도 미안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시골에서는 만사를 제치고 서울까지 달려오는데 서울 사는 친구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시골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듣고 마음이 찔려 참석을 다짐했다. 친구들과의 정겨운 만남만으로도 뜻 깊을 터에 수십 년 만의 겨울 천렵 계획에 몰래 가슴이 뛰었다.
▦ 저녁 술자리가 1차, 2차로 넘어가는 동안 재빠른 친구가 깜깜한 냇가에 나가 얼음을 깨고 길게 그물을 쳐 두었다. 술자리가 끝나 한 친구가 대를 물려 살던 집에 설치한 황토찜질방에 몸을 뉘었다. 이튿날 아침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한낮의 얼음치기 돌치기로 건져 올릴 물고기 모습이 천장에 어른거렸다. 친구가 귀한 술이라고 내온, 고량주 냄새가 나는 독한 술이 20년 묵은 뱀술이란 소리에 여자 동창들이 웩웩거리고, 새벽이 다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냇가로 달렸다.
▦ 얕은 잠에서 깨어 아침 일찍 냇가로 나갔다. 그물은 갈가리 찢겨 있었다. 그물을 친 친구가 “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내려 온 모양”이라고 혀를 찼다. 수달의 짓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개체수가 급증해 윗마을에서는 겨울천렵이 사라졌지만 아랫마을은 지난해까지도 괜찮았다고 했다. 물속에서 느릿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낚아채거나 바닥의 돌을 헤집어 잠자던 물고기까지 싹쓸이하기에는 겨울철이 천렵꾼보다 수달에게 더욱 유리했던 셈이다. 그나마 돌치기로 멀건 매운탕은 끓이며, 겨울천렵은 이제 수달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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