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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얼기설기] 양력과 음력 사이

입력
2015.01.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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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초(歲初)를 정하는 다양한 방법

자연의 시간에 인간이 기준점 찍어

‘을미적’거리는 한 해 되지 않길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스무여일이 지났다. 이미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신년 계획도 많을 것이다. 해가 바뀌는 시기가 되면 운동기구 등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신년에는 계획적인 삶을 살고픈 희망을 담아 다이어리나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이들도 는다. 하지만 대개 많은 다짐들은 며칠 지나면 흐지부지된다. 물론 올해는 특이하게도 가격 인상 덕분에 여느 해와 달리 좀더 오랫동안 금연 약속을 지키는 경우가 있긴 하다. 새해의 결심을 접는 작심삼일에도 그럴듯한 명분을 찾곤 하는데, 간혹 1월 1일이라는 날짜는 사람이 임의로 정해놓은 것이어서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경북 포항은 명절 귀성인파 못지 않게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1월 1일에는 북새통이 된다.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와 추억이 되는 해돋이이지만, 어찌 보면 1월 1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1년 365일 변함없이 뜨는 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받았던 여러 질문 중에 가장 답하기 곤란했던 것 중 하나가 몇 살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달력은 이미 새해가 왔음을 알리지만 아직 설이 지나지 않은 시기, 양력의 신정과 음력의 설 사이의 나이는 묻는 이들마다 계산법이 달랐다. 특히 양력의 사용을 권장하며 음력 설을 민속의 날이라 부르던 시기도 있었기에, 세대에 따라 나이를 먹는 시기가 달랐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도 하는데, 양력과 음력의 새해 첫 날에는 모두 떡국을 먹었던지라 이 또한 나이를 먹는 시점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했다.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나름의 지혜로운 해결법을 찾았다. “새해에는 몇 살이 됩니다.”라는 답으로 묻는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에 따라 필자의 나이를 먹는 시점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혼돈은 양력과 음력의 구분이 사라져야 해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1월 1일은 사람이 임의로 정한 날짜이다. 하필 이 날이 한 해의 처음이라고 정한 것은 자연이 아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새해 첫 날이어도 된다. 다만 한 해, 한 달의 길이는 자연이 정한다. 지구가 태양(해)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오면 한 해가 되고,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된다. 지구가 자전하는 시간이 곧 하루이다. 다만 하루와 한 달, 한 해의 관계를 정하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양력과 음력 같은 복잡한 구분이 생긴다. 달이 지구를 도는 한 달이 열두 번 반복되는 시간과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릴 때 곤란한 질문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좀더 정교하게 자연을 설계하지 않았다며 조물주를 원망하기도 했다. 좀더 지식이 늘어나면서 비단 열두 달과 한 해의 주기 뿐 아니라, 하루와 한 달의 주기도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윤년이 생기고 윤달이 존재한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언제나 어려운 것이 문법에 존재하는 예외인데, 달력에도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천체의 움직임은 여러 주변 상황에 의해 조금씩 변한다.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도 항상 똑같지 않다. 달력과 시계는 결국 천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정한 것이기에, 자전 속도가 조금 바뀌면 하루의 길이도 이에 맞추어 바꿔줘야 한다. 그래서 윤초라는 것을 통해 오차를 보정한다. 어떤 해에는 두 번의 윤초가 적용되어서 다른 해보다 유난히 더 긴 한 해를 보낸다.

올해가 2015년인 것은 사람이 결정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서기를 따르는데, 이외에도 단기, 불기, 혹은 나라마다 고유한 연호를 사용하여 연도를 매기기도 한다. 그래서 달력은 그 나라의 국력과 과학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잊어도 좋다. 작년은 갑오년, 올해는 을미년, 내년은 병신년이다. 두 갑자 전의 갑오년(1894년)은 동학 혁명의 시기였다.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거리다, 병신되면 못가리.” 당시 동학군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올해의 신년 다짐은 반드시 지켜서, 을미적거리다가 보내는 한 해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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