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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돼 가는 몸 이끌고 '죽을 권리' 필생 투쟁

입력
2015.01.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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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에 불치병 진단… 조력자살 합법화 앞장, 용기 앞에 허물어지는 벽

1963. 5. 4~2014. 12. 23 데비 퍼디는 자신의 삶과 사랑과 죽음의 과정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내보임으로써 존엄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팔코너 영국 전 상원의장은 “그의 용기로 영국 시민들은 조력자살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Dignity in Dying 홈페이지에서.
1963. 5. 4~2014. 12. 23 데비 퍼디는 자신의 삶과 사랑과 죽음의 과정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내보임으로써 존엄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팔코너 영국 전 상원의장은 “그의 용기로 영국 시민들은 조력자살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Dignity in Dying 홈페이지에서.

죽음은 모든 생명의 두렵고 슬픈 숙명이지만, 슬픔의 부피나 두려움의 양상까지 온전히 숙명은 아니다. 존엄사의 명분은 그 단순한 사실 위에 서 있다. 숙명에 닿기까지 겁에 질려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이들, 아무 희망 없이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가혹한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연명하다가 어느 날 숙명에 목 졸리기 싫다고 판단한 이름없는 무수한 이들이, 오래 전부터 저 장엄한 물길을 열어왔다. 그들은 종교와 윤리와 법과 관습에 맞서 그들이 믿는 바 개인의 가장 궁극적인 자유와 권리를 찾아 실천했다. 이제 마침내, 아직은 소수지만, 그들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하는 국가들이 생겨났고, 그 주장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금 그 허물어지는 벽 앞에 영국이 있다. 영국 상원은 지난 해 11월 패닉(Lord Pannick) 상원의원이 발의한 조력자살 법안(Assisted Suicide Bill)을 표결 끝에 만장 일치로 채택했다. 팔코너(Falconer) 전 상원의장의 조력자살법안을 수정 보완한 이 법안은 두 명 이상의 의사가 6개월 이상 살 수 없다고 진단한 시한부 환자가 ‘자발적으로 명백하게’ 조력자살 의사를 밝힌 경우 고등법원이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달 뒤인 12월 28일 ‘텔레그래프’는 조지 케리 전 캔터베리 대주교와 소설가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영화배우 휴 그랜트, 철학자 크리스 우드헤드 등 저명 인사 80여 명이 서명한 조력자살 합법화 촉구 서한을 보도했다. 이들은 “시민 대다수가 조력자살 허용 법안을 지지하고 있고(…) 우리는 시한부 환자가 스스로 죽을 방법을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가디언’도 “이제 변화가 불가피하며, 늦어도 2년 안에는 의미 있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케일라쉬 챈트 영국의학협회 부회장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저 변화의 중심에 데비 퍼디(Debbie Purdy)의 삶과 죽음이 있었다. 그는 여행과 모험과 사랑을 즐기던 31살의 어느 날 불치병 진단을 받은 뒤 신경과 근육이 마비돼가는 몸을 이끌고 조력자살 합법화 캠페인의 선두에 섰다. 2013년 12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호스피스 시설에 들어가며 “단식으로 내 운명을 스스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했던 그가 지난해 12월 23일 숨졌다. 향년 51세.

데비 퍼디는 버밍험 대학 재학시절의 자신을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가끔 마거릿 대처 정부 반대 시위나 이런저런 공익 캠페인에 참여한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다만 ‘아드레날린 중독자(adrenaline junkie)’라 할 만큼 활동적이어서 틈만 나면 스카이다이빙과 등산, 정글 트레킹,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다니곤 했다. 모험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동경으로 그는 스무 살 무렵 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에 나선다.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를 떠돌며 현지에서 일해 돈을 모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일상.

1994년 싱가포르에서 음악 칼럼니스트로 일하던 무렵 그는 몸의 이상을 처음 경험한다. 쉬이 피로해지고, 손발이 뜻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 처음에는 정서적 충격 탓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3년 전인 91년 한 해 사이에 부모와 아주 가까이 지내던 친척을 병으로 잃었다. 95년 정밀검진 결과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는다.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감각과 운동신경이 서서히 마비되고, 기억과 인지기능 장애까지 겹치기도 하는 병이다. 그의 증상은 원발성 진행형(primary Progressive)으로 느리지만 집요하게 악화하는 경우였다.

당시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쿠바 출신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오마르 푸엔테(53). 둘은 퍼디의 병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병을 계기로 서로에게 더 간절해졌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98년 결혼, 퍼디가 숨질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켰다.

언제 어떤 증상이 나타나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일상. 임신 등 미래를 설계하고 대비하는 모든 문제를 두고 둘은 여느 커플에게 요구되는 진솔함 이상의 진솔함으로 서로를 대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뒤 내 증상이 악화했을 때 어떤 상황이 빚어질지 우리는 아주 정직하게 이야기해야 했다. 오마르는 아이와 나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 우리의 감정과 삶의 실재를 두고 대화했다.” 조력자살 합법화를 위한 법정투쟁과 캠페인을 시작한 뒤 퍼디와 오마르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신문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드러냈다. 그들이 얼마나 아이를 원했고 또 노력했는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얼마나 오래 사랑하고 싶은지, 얼마나 삶을 사랑하는지.

조력사 합법화를 위한 법정 투재을 벌이던 시절의 퍼디와 오마르. BBC 화면 캡쳐.
조력사 합법화를 위한 법정 투재을 벌이던 시절의 퍼디와 오마르. BBC 화면 캡쳐.

데비가 자신의 숙명을 회피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오마르의 사랑이 힘이 됐을 것이다. 2001년 무렵부터 데비는 누가 휠체어를 밀어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 무렵 다이앤 프리티(Diane Pretty)의 고등법원 탄원소송이 있었다. 역시 불치병인 운동뉴런증 환자였던 프리티는 스위스 조력자살 여행에 남편이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고, 법원은 그 청을 거부했다.

영국은 1961년 제정된 자살방지법(Suicide Act)에 따라 자살을 부추기거나 도운 사람에게 최고 14년 형을 선고할 수 있다. 반면 안락사와 조력자살이 합법인 스위스에는 2014년 현재 모두 6개의 조력자살 클리닉이 있고, 이 가운데 ‘디그니타스(Dignitas)’를 비롯한 4개 클리닉은 외국인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덜란드는 조력자살이 합법이지만, 최종 처방을 받기까지 최소 2년간 회원으로 등록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법적 조건이 있다.

프리티는 2002년 5월 영국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프리티의 죽음은 내게 최악의 악몽이었다.” 퍼디는 오마르와의 사랑으로만 채워도 부족할 자신의 남은 삶을 ‘죽을 권리’를 위한 싸움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질 때, 그래서 스위스까지 혼자 갈 수 없어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그를 자살방조혐의로 기소될 가능성 속에 남겨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게 그의 결심이었다.

2008년 그는 프리티의 전철을 밟아 오마르의 동반 자살여행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역시 패소한다. 하지만 그는 61년 법의 자살 방조 규정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며 법 개정 투쟁을 전개한다. 그를 지원한 영국 존엄사 옹호단체 ‘Dignity in Dying’의 사라 우튼 사무총장은 “데비는 수많은 영국인들이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현실을 모른 척한 채 사랑하는 누군가를 투옥하겠다는 위협으로 죽을 권리를 가로막아온 법의 위선에 맞섰다”고 표현했다. 2014년 8월 스위스 취리히대학 조사에 따르면 2008~2012년의 5년 동안 스위스에서 조력자살한 외국인은 31개국 611명이었고, 그 가운데 영국인은 126명으로 독일 다음으로 많았다. 2주마다 한 명꼴이다.

2009년 영국 상원은 마침내 정부가 조력자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의결했고, 케이어 스타머 당시 검찰총장은 이듬해 2월 16개항의 조력자살 기소 항목을 확정 발표한다. 스타머 총장은 “조력자살의 정황을 따지되, 자살을 돕는 사람의 동기와 자살자의 표현능력, 그리고 명백한 의사표시를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이후 검찰은 조력자살 방조 혐의로 약 90여 건을 조사했으나 단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마침내 퍼디는 오마르의 손을 잡고 스위스까지 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디그니타스에서 조력자살 서비스를 받으려면 클리닉 비용만 9,000~1만600스위스프랑(995만~1,160만원)이 든다.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사이먼 젠킨스 의장은 가디언 칼럼에서 “(스위스 자살여행자보다) 10배쯤 많은 수의 가난한 이들이 현대의 영국 사회에서 은밀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썼다.(2014.12.30) 챈트 부회장도 “지금 우리에겐 두 갈래 시스템이 있다. 하나는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이용할 만한 돈과 조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가디언, 2014.11.8)

퍼디가 스위스로 떠나지 않고 영국에 남기로 한 것, 고통을 견디며 죽을 때까지 싸움을 지속하기로 한 것도 저 법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2013년 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두렵지만 음식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BBC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해 7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호스피스시설인) 마리 퀴리조차 내 통증을 덜어줄 준비가 안 돼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여섯 달 된 아이가 걷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어 했고, 남편의 첫 솔로 음반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또 듣고 싶어 했다. 누구나처럼, 아니 누구보다 더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없이 고통 속에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세상 앞에 의도적으로 전시했다. 시한부 환자의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 죽음의 과정을 영국 시민들이 보고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하기를 바랐고, 영국 의회를 비롯한 조력자살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과 종교인, 장애인들의 생각이 바뀌고, 법이 바뀌기를 바랐다. “지금이라도 누가 다발성경화증 치료법을 발견한다면 나는 환자 대열의 맨 앞에 서겠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을 끝내고 싶어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력 자살에 반대하는 이들은 생명의 신성을 이야기한다. 의사에게 환자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주게 되면 환자의 자율성이 거꾸로 침해될 수 있다고도 한다. 환자의 뜻에 반하는 죽음(사실상 살인)이 있을 수 있고, 장애인이나 치료비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이 그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도 한다. 캐머런 영국 총리가 조력자살 합법화에 반대해온 이유는 고령의 환자들이 부당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거였다. 네덜란드 의사 캐럴 구닝(Karel Gunning)은 “죽음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생각하게 될 수천 가지의 문제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죽을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모든 싸움의 주체들은 저 모든 종교적ㆍ윤리적 당위와 부작용의 우려에 맞서야 했다. 프리티 전에는 토니 닉린슨이 있었다. 락트인 신드롬으로 전신이 마비된 그는 2005년 소송을 시작해 2012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직후 단식 끝에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로 고통 받던 폴 램도 있었고, 역시 락트인 신드롬을 앓던 마틴이 있었다. 암 투병하던 아내 도린 케어(1924년생)와 함께 2007년 동반자살한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고르(1923년생)가 있었고, 2013년 11월에는 86세 동갑내기 학자였던 조제트와 베르나르 카제 부부가 존엄사의 권리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긴 채 함께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들은 당위와 우려가 아니라 실제 삶(과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맞섰다.

여러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영국 시민의 60~70%가 조력자살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다. 조력자살법안을 처음 발의했던 팔코너 의원은 “데비 퍼디의 용기로 영국 시민들은 조력자살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이먼 젠킨스는 가디언 칼럼에서 “의회는 조력자살 합법화로 데비 퍼디의 삶과 죽음을 추도해야 한다”고 썼다. 젠킨스는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며 조력자살에 반대해 온 테레사 메이 내무부장관의 말을 ‘헛소리(drivel)’라며 격앙된 어조로 비판한 뒤 “퍼디의 남편은 의회에 의해 단식을 강요당한 채 고통 속에 숨져 간 아내를 도운 마리 퀴리 호스피스측에 감사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아내와 같은 운명에 처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게 해준 의회에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라고 글을 맺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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