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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권위보다는 쇼맨십·인지도… 億 소리나는 '말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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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권위보다는 쇼맨십·인지도… 億 소리나는 '말 값'

입력
2015.01.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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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인사 위에 유명 연예인… 김제동 회당 1000만원대

매체 노출빈도 높으면 A급… 청중 관심 끌기 '보증수표'

혜민스님이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인문문화포럼 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혜민스님이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인문문화포럼 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1,000만원은 평범한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이 몇 달 일해야 만질 수 있는 금액이다. 허탈하게 들리겠지만 유명 강연가들은 단 한번 강의로 이 돈을 번다. 강연시장이 커지면서 연사들의 통찰력에 부여하는 가치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 달 강연수입이 1억원대인 연사까지 있다.

억대 연봉은 기본. 시간당 500만원 이상도 많아

한국에서 강연하는 인사들의 몸값은 사회적 지위나 권위보다 쇼맨십, 대중 인지도가 좌우한다. 유명 연예인들이 학계인사들보다 평균 2배 이상 많이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연시장에서는 연예인들을 아예 특A급으로 분류한다. 토크콘서트로 강연시장 주가를 높인 방송인 김제동씨는 회당 1,000만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009년 시작돼 6년째 이어지는 김씨의 토크콘서트는 누적관객 21만명을 넘어섰는데 티켓은 최고 7만7,000원에 판매된다. 박경림 이윤석 김영철 박지선 남궁연씨 등도 600만~800만원대 고액 강연료를 받는다. 방송인 김영철씨는 영어를 배운 경험을 활용한 자기계발을 주제로 강연하는데 회당 1,000만원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예인 아래 600만~800만원대의 A급 강사진에는 해당 분야 대표 급 인사들이 올라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장) 김성주(MC) 김정운(교수) 남희석(희극인) 손범수(MC) 등이 대표적이다. 교수들은 전문성이 검증된데다 강의 경험이 풍부해 섭외만 되면 중간은 간다는 믿음이 형성돼 있다. 트렌드에 맞고 다양한 주제로 강연이 가능한 심리학 교수 출신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나,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발간하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공학과 교수 등은 섭외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해외연사의 초청 강연료는 국내 인사의 10배 이상이란 게 통설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제레미 리프킨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등은 항공권, 숙박료에 수억원을 주어야 국내 초청이 가능하다. 뉴스위크 전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2009년 방한 때 10억원의 강연료를 요구해 관계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강사가 되려면…매체 노출빈도를 높이고, 저서는 필수

‘일단 유명해져라’는 앤디 워홀의 명언이 가장 잘 적용되는 곳이 강연시장이다. 저명성만 갖춰도 강의내용과 상관없이 청중들은 열광한다. 특A급 연사들이 연예인인 것도 그렇고, 지상파나 케이블TV에서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연사 대부분이 A급으로 분류된다. 교육컨설팅을 하는 최모(29)씨는 “매체에 노출된 강사들은 적어도 청중들의 관심은 끌 수 있기 때문에 섭외하는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이 된다”고 말했다.

인지도 만이 롱런하는 강사의 비결은 아니다.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연사가 없듯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인지도 보다는 풍부한 콘텐츠가 중요하다. 시골의사 박경철씨나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다양한 주제로 강연이 가능해 이런 경우에 속한다. 반면, 종편 예능에서 주목받은 칼럼니스트 B씨의 경우 부실한 내용과 무성의한 강연으로 나쁜 평을 받고 있다. 강사 중개업체 파인드강사의 김정숙 실장은 “눈에 띄는 명사들은 청중에 맞게 주제를 진화시켜 나가는 사람들”이라며 “강연시장은 자기 밑천이 바로 드러나, 언변이나 인지도만 믿고 방심하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고 냉혹한 현실을 전했다.

강연계에서 이름을 날리려면 책 저술은 필수다. '책= 전문가'로 취급되면서 일종의 강연 면허처럼 연사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아리랑유랑단의 문현우 단장은 지난해 11월 세계에 한국문화를 전파한 경험을 책으로 펴내자 12월에만 강연 요청이 평소보다 3배가 넘는 13회나 들어왔다. 그는 "자기계발과 꿈에 대한 강연을 하는데 저서가 강연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 데 한몫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직 강연을 목적으로 책을 쓰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재테크 명강사로 서울 여의도에 알려진 A씨는 최근 증권 고수 이야기를 출간한 뒤 주말 3번 강의에 월 36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는 "책을 출판했을 때 수강자들이 더 몰린다”라며 "출판 효과는 보통 1년을 못 가기 때문에 매년 책 구상을 한다”고 말했다.

강연 범람의 시대, 이념 대립화 우려도

인기강사로 강연 질의 유지는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에서 살아 남기 어렵다. 유명인사 강의도 실망스런 반응이 나오면 더는 ‘구매자’를 찾기 힘들다.교육컨설팅 전문가 이모(35)씨는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시사평론가 A씨를 모셔 강연했지만 수준 이하라는 피드백이 다수여서 다시는 초청하지 않는다"며 "인기가 아니라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홍남호(26)씨는 3년 전부터 사업강연을 매주 찾아 듣는 강연 마니아였지만 최근 이를 포기했다. 그는 "모바일 트렌드 강연자는 자기 책 소개에 바빴고 내용도 관련 기사 한두 개만 읽으면 알 수 있는 피상적 정보가 전부였다"며 "결국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연이 정치적 이념을 전파하는 도구로 활용돼 갈등을 유발한다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모두 지금까지는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보수진영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졌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치적 강의도 힘을 얻는 법"이라며 "어느 쪽이든 대중들이 공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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